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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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의 감춰진 美 우선주의

2022-12-22 (목)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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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고 백악관에 입성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고 일갈했다. 이러한 바이든 대통령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지지자들의 대선 부정론과 1월6일 의사당 폭거로 대변되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중국의 거친 도전과 공세, 미국 동맹국들의 대미 신뢰도 저하 등으로 미국이 정말 국제적 리더십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의구심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순연시키면서 미국과 동맹국 간 결속의 촉매제가 된 사건은 올 2월 말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를 규탄하는 민주주의 연합전선이 미국과 유럽·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 빠르게 형성돼나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동맹국에 대해 미국이 지불해야할 신뢰 회복 비용을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지원하는 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진영 간에 신냉전 모드가 형성됐다. 양대 진영을 가르고 또 각 진영을 응집해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이 돌아왔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8월16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효력을 발휘하면서 바이든 버전의 경제 민족주의의 발톱이 드러나자 미국과 동맹국 간에 알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미 간뿐 아니라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과 미국 사이에서도 IRA로 인해 갈등의 조짐이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산 전기차에만 소비자 세액공제의 혜택을 부여하는 규정 등으로 한국과 일본·유럽의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서 차별 대우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해지면서 동맹국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이 돌아왔다”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시작된 것이다.


잠시 뒤돌아보면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한국의 대기업들은 그의 요청에 따라 미국의 공급망 국내화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불과 몇 달이 지나 제정된 IRA의 외국산 전기차 차별 조항은 한국의 기업과 국민을 꽤나 섭섭하게 했고 우리 정부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을 방문해 12월1일 바이든 대통령과 마주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IRA의 차별적인 요소를 강하게 문제 삼았다. 그 결과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서는 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에 태스크포스가 운영될 것을 명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이나 유럽에서 큰 불만을 자아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 국내에서 IRA는 기후변화 및 에너지 안보 대책에 관한 획기적인 법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IRA 통과로 청정에너지 분야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은 물론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 이상이 감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미국은 2050년 넷제로 달성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국내적 성과가 이 법이 담고 있는 차별적 요소로 인해 국제사회에서는 외면 받고 있다. 동맹국 여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역협정 개정을 요구하면서 보복 조치로 으름장을 놓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투박하고 노골적인 경제 민족주의였다면 바이든 대통령 버전은 세련된 포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 민족주의의 속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미국은 돌아왔는가. 아니 자기 문제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미국은 정말 다시 돌아올 수 있기나 한 것인가. IRA는 한미 동맹의 한 축인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다시 던져주고 있다. 국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나라 밖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계속되는 금리 인상,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전략 부재 등을 둘러싸고 이러한 질문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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