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 나오는 여러 장면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아기 예수 탄생을 능가할 것은 없을 것이다. 말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 옆에 동박 박사를 비롯한 목동들이 둘러 앉아 경배하는 모습은 한 폭의 완벽한 그림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일까.
아기 예수 탄생은 4 복음서 중 마태와 누가에 실려 있다. 마태 복음에 따르면 동방 박사가 새로 나타난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헤롯 왕에게 새로 태어난 유대의 왕에 대해 묻자 헤롯은 자기도 경배하고 싶으니 있는 곳을 알아낸 후 알려달라고 한다. 동방 박사는 그리스 원어 ‘마기’의 번역으로 ‘마기’는 페르샤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를 일컫는 말이다. ‘마법사’를 뜻하는 ‘magician’이 여기서 나왔다.
동방 박사들은 별이 인도하는대로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에 찾아가 각각 왕과 제사장, 선지자를 상징하는 황금과 유향, 몰약을 바친 후 천사가 꿈에 나타나 알려준대로 헤롯을 피해 딴 길로 돌아가고 요셉도 역시 꿈에 천사가 일러준대로 이집트로 피난갔다 헤롯이 죽은 후 갈릴리에 정착한다. 속은 것을 알고 분노한 헤롯은 새로운 왕이 날 곳으로 예언서에 적힌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 아기를 모두 학살했다는 것이 줄거리다.
짧은 이야기지만 의문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하늘에 나타난 별을 따라 아기가 태어난 집을 찾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이다. 건물 높이로 낮게 뜨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고 그렇게 낮게 떴다면 그건 별일 수 없다. 또 만약 진짜 뭔가가 떠 동방 박사를 페르샤에서 베들레헴까지 인도했다면 예루살렘에 들러 헤롯을 만날 필요도 없었다.
헤롯도 새 왕을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동방 박사에게 태어난 장소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보다 스파이를 붙이는 것이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예수가 태어난 지 70~80년 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태 복음의 저자가 요셉과 동방 박사 꿈에 천사가 나타난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 지도 의문이다.
반면 누가 복음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는 원래 갈릴리 사람이었다. 로마의 사실상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온 천하에 호적하라는 명을 내리고 각자 자기 조상이 살던 곳으로 가라고 해 요셉의 조상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의 총독일 때’ 일어난 것으로 돼 있다. 잘 곳이 없어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고 천사의 고지를 받은 목동들이 그 주위에 몰려 온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누가 복음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며 마태 복음의 내용과 상충된다. 로마 제국은 한번도 제국 전체 동시 인구 조사를 한 적도, 그 때 고향으로 내려가라는 칙령을 내린 적도 없다. 그렇게 할 경우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퀴리니우스가 인구 조사령을 내린 것은 기원 후 6년이다. 아동 학살 명령을 내린 것으로 돼 있는 헤롯은 기원전 4년에 죽었다. 아무리 예수라도 두 번 태어날 수는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존재한다.
4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 복음에는 베들레헴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고만 돼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사실을 몰랐거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적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봐야 한다.
4 복음서 전편을 통해 예수는 자신이 다윗의 후손이며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다윗이 구세주를 내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구세주가 그 자손일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요한 복음에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그가 메시아라고 주장하자 바리새인등 비판자들은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그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기록돼 있다’며 ‘갈릴리에서는 나올 수 없다’고 공박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도 이를 반박하지 않는다. 이런 점들로 미뤄 보면 마태와 누가가 애써 예수의 베들레헴 출생설을 주장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진짜 메시아임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2,000년이 지난 지금 예수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성경 자체가 예수는 다윗의 후손 요셉의 친자식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야훼의 독생자며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메시아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탄생의 비밀과 관계 없이 올해도 내년에도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베들레헴 말 구유에 누운 예수의 모습이 어김 없이 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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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