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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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karma)인가, 섭리인가’

2022-12-1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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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7일 한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계약에 서명했다. 수출품은 반도체도, 선박도, K-드라마도 아니었다. 무기다.” 포춘(Fortune)지 보도다.

폴란드가 한국의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48대 등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자 포춘은 이를 놀라움 그 자체로 전하면서 앞으로 한국의 최대 수출품목은 반도체도, K-팝도 아닌 K방산(defense)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하고 나섰던 것이다.

“2022년은 ‘경이의 해’(annus mirabilis)로 기록될 것 같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던진 화두였던가. 폴란드 대박수출을 전후해 2022년 한 해 동안 K방산이 보여준 쾌속질주는 정말이지 ‘경이롭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2년 전만해도 20~3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던 한국의 방산수출은 2021년 70억 달러 선을 마크,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발한 올해 10월말 현재 170억 달러(연말까지는 200억 달러 돌파 예상)를 기록, 세계 4위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 가공할 전진 속도는 마치 터보엔진이라도 장착한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한국의 방위산업이 혁명적 상황을 맞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포린 폴리시지가 내린 논평이다.

포브스지도 2000년 세계 31위에 머물렀던 한국의 방산수출이 세계 4강 수준으로 치솟고 올라오고 있는 데 경이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포브스가 특히 주목한 것은 튀르키예를 예외로 하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국 중 폴란드가 처음으로 나토동맹 밖에서 주요 무기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구입한 사실이다.

주요무기 시스템은 대서양지역에서 태평양지역으로 수출되는 것이 근대 이후 일관된 하나의 흐름이었다. 그런데 그 흐름에 역류가 발생했다고 할까. 태평양지역에서 대서양지역 쪽으로. 그 현상을 놀라움으로 받아드리고 있는 것이다.

K방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미국언론뿐이 아니다. 중국, 일본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특히 미국이 한국에서 10만 발의 포탄을 구입하기로 한 결정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와 함께 한국방산의 존재감은 더 커지고 있다는 논평을 했다.

‘세계 4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K방산’- 이는 그러면 제 2의 냉전시대를 맞아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전쟁은 변화를 불러온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그 주요 변화의 하나는 나토동맹국, 더나가 서방국가들의 결집이다. 전 세계로 이어진 방대한 동맹 망, 그리고 파트너십, 이것이 권위주의 독재세력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산임이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한 때 ‘뇌사판정’까지 받았던 나토다. 그 나토 동맹들은 미국과 하나가 되어 러시아의 공격을 저지했다. 심지어 중립국이었던 핀란드와 스웨덴도 나토에 가입했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 2023년 새해를 맞아 미국은 동맹 간의 결합조직을 강화해 동과 서를 잇는 보다 구체적 연합전선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지의 전망이다.

바이든은 중국과의 경쟁을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독재세력 간의 투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오랜 지정학적 개념으로 보면 유라시아 하트랜드의 대륙세력을 견제하는 다툼으로 서방동맹의 비상경계선은 서쪽으로는 영국에서 동쪽으로는 일본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전선에서는 집단안보체제인 나토를 통해 동맹 비상경계선이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아시아전선이다. 인도태평양지역에는 그런 동맹체제가 없다. 한미동맹. 미일동맹 등 각각이 별개인 동맹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정황에서 워싱턴은 미국의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을 연계시키는 부단한 노력을 펼쳐왔다. 미국, 영국, 호주 군사동맹인 ‘오커스(AUKUS)결성, 2022년 마드리드 나토정상회담에 한국 등 태평양지역 국가들 초청, 나토회원국 해군함정 남중국해 항해 등이 그 일환이다.

관련해 워싱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민주주의 산업선진국 모임인 G7을 G12으로 확대하자는 안이다. 기존 멤버인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다가 한국, 호주, 뉴질랜드 등 3개 태평양지역 국가들과 나토와 유럽연합(EU)을 새 회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권위주의 세력저지에 나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 부상한 한국이 주요무기 체계를 수출한 나라들이다. 폴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체코, 루마니아…. 이 나라들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하나의 그림이 떠올려진다. 러시아의 팽창, 압제에 맞서 최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나라에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한국은 우크라이나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는 호주,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이 한국방산의 주 수입국이다. 그 모양새 역시 그렇다. 중국의 팽창 저지에 나서고 있는 나라들과 한국은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할까.

다른 말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강화에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은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3년은 그 본격적 행보에 나서는 원년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카르마(karma)인가, 섭리인가’-. ‘세계 4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K방산’- 이와 관련해 다른 한편 스치는 상념이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에 의해 6.25의 참화를 겪었던 대한민국이 러시아와 중국의 팽창세를 저지하는 보이지 않는 중추적 첨병역할을 하고 있으니.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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