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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악 北 인권에 눈감으면 안 된다

2022-12-16 (금)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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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이슬람 공화국의 43년 역사상 최장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여대생과 관련한 반정부 시위다.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480여 명이 사망하고 1만8,000여 명이 구금됐다고 한다. ‘신과 전쟁을 벌였다(모하레베)’는 혐의로 시위 청년 두 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거센 저항의 불길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테헤란에는 히잡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이 수천여 명에 이른다.

중국에서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처음으로 청년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저항을 뜻하는 ‘백지(白紙) 시위’가 베이징 등 전국 20여 개 도시로 퍼졌다.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의 3기 체제가 출범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급기야 사회주의 체제 우월성의 근거로 내세웠던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풀었다. 하지만 ‘준비 안 된’ 방역 완화에 두려움과 불안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해졌지만 아직 효과 있는 백신의 접종도, 자연면역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사망자가 2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란과 중국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배경에는 정치적 자유와 언론 자유의 부재, 인권 부재, 궁극적으로는 민주화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삼권분립·법치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남미 등 비서구권으로 대거 이식됐다. 처음에는 많은 나라에서 이를 악용한 독재 체제가 들어섰다. 그러나 경제 발전과 시민들의 저항으로 많은 나라에서 민주화가 이뤄졌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필리핀·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이 그 예다. 학계에서는 나라가 부유해지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이 통설에 가깝다. 한국과 칠레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5,000달러 즈음해 민주화를 이뤘다. 중국은 지난해 1만 2,500달러였지만 아직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중국의 민주화는 북한의 민주화와도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란·중국보다도 인권 수준이 훨씬 열악한 나라가 북한이다. 12월10일 세계 인권의날을 맞아 미국 등 31개국의 주유엔 대사들이 최악의 인권침해국 가운데 하나로 북한을 꼽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0만 명 이상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고 고문, 즉결 처형 등을 저지르면서 주민들이 심각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려도 무기 개발에 자원을 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12년 연속으로 북한을 세계 최악의 인권 국가로 지정했다. 얼마 전 양강도 혜산시에서 두 명의 10대 학생이 한국 영화·드라마를 친구들에게 유포해 공개 처형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됐지만 5년 내내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지 않고 방치했다. 이 재단은 아직도 더불어민주당이 이사 추천에 응하지 않아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인권대사도 집권 내내 공석으로 뒀고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예산은 10분의 1 토막을 냈다.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2명을 흉악범이라며 강제 북송해 국제사회로부터 ‘반인륜적 행위’라는 지탄도 받았다. 오죽하면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가 올해 3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비도덕적이며 절대적 수치”라는 공개서한을 보냈을까.

다행히 윤석열 정부는 북한인권대사를 서둘러 임명하고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 수립에 나섰다.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태 보고서도 내년 초 처음 공개한다고 한다. 동포의 처절한 인권 상황에 대해 눈감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70년 이상 헤어진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서신 교환도 할 수 없는 불행이 세상 어디에 있나.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만큼 북한 인권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야한다. 강력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북핵 대응을 위한 확장 억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재래식 전력의 압도적 우위도 지켜나가야 한다. 86그룹을 포함한 야권은 한물 지난 이념의 허상에서 깨어나 참담한 인권 아래 허우적대는 북한 주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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