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에 진 루사일 스티다움서 4강 확정…크로아티아와 일전
▶ 1990 대회서도 카메룬에 져 어렵게 출발…결승서 서독에 고배
기뻐하는 리오넬 메시 [로이터=사진제공]
사우디아라비아가 '루사일의 기적'을 연출할 때만 해도 카타르 월드컵 우승 후보로 꼽히던 아르헨티나의 앞길에 그림자가 짙었다.
지난달 22일(이하 한국시간) 아시아에서도 강팀이라 불리지 못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후반 2골을 몰아치며 이변을 일으키자 아르헨티나가 과연 우승 후보인지 회의론이 증폭됐다.
그로부터 18일 후 아르헨티나는 보란 듯이 4강 진출을 확정했다.
팀의 간판인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됐던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아르헨티나는 10일 이 경기장에서 열린 네덜란드와 대회 8강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까지 120분을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겼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일격을 당한 아르헨티나는 이후 멕시코, 폴란드(이상 2-0)를 완파한 후 16강전에서 호주(2-1)도 꺾었다.
승부차기 시 공식적으로는 무승부로 기록돼 4연승을 달리진 못했지만, '역대급 이변'인 첫 경기 패배 끝에 보인 좌절과 실망은 이제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날도 무서운 뒷심을 보인 네덜란드에 후반 38분부터 2골을 내주며 따라잡혔지만, 위축되지 않고 연장전 내내 공세를 폈고 승부차기에서 결실을 봤다.
AFP통신에 따르면 메시는 경기 후 "우리는 매 경기 열망과 열정으로 임하는 법을 안다. 그래서 우리가 4강에 올랐다"며 "정말 기쁘다. 연장전이나 승부차기까지 진행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이겨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가 또 한 번 환희와 좌절의 갈림길에 설 장소도 루사일 스타디움이다.
14일 오전 4시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 끝에 강력한 우승 후보 브라질을 꺾은 크로아티아와 이 경기장에서 맞붙는다.
크로아티아마저 이기면 아르헨티나는 36년 만의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두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우승은 자국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맹활약한 1986 멕시코 대회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전성기가 이어지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우승을 거머쥘 뻔했다.
그러나 서독과 결승에서 0-1로 패하며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마라도나는 시상대에서 눈물을 쏟았다.
패배도 분했지만 심판이 불리한 판정에 당했다는 억울함이 더 컸다.
당시 에드가르도 코데살 주심은 아르헨티나 선수 2명을 퇴장시켰고, 후반 40분에 서독에 페널티킥 기회를 줬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코데살 주심을 '마피아'에 빗대며 "우리는 열심히 뛰었지만 그 남자가 모든 걸 망쳤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경기가 끝나고) 오랫동안 울었다"며 "축구는 내 인생이다. 2등을 해서 운 게 아니라 패배하는 과정 때문에 울었다"고 밝혔다.
결승까지 오른 이때의 아르헨티나도 사실 첫 경기부터 '역대급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로 구성된 카메룬과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이 0-1로 패한 것이다.
이 경기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 콘텐츠 플랫폼 FIFA+가 선정한 역대 이변 사례에 포함될 정도로 충격이 컸다.
이 패배의 여파로 조 3위로 어렵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를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해 16강부터 브라질,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를 차례로 격파했다.
당시 본선에는 24개국이 출전, 6개 조의 조 3위 가운데 성적이 좋은 4팀도 16강에 올랐다.
32년 후 또 한 명의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메시를 중심으로 뭉친 대표팀도 이변의 쓰라림을 딛고 4강에 안착했다.
공교롭게도 똑같이 첫 경기에서 이변을 겪으면서 메시에게 이번 대회는 자신의 첫 우승과 함께 선대 축구 영웅의 한을 풀 기회가 됐다.
메시는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5일 마라도나 사망 2주기를 맞아 인스타그램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젊은 마라도나의 사진을 올렸다.
다음 날 펼쳐진 멕시코전에 2-0 쾌승을 거두면서 메시와 아르헨티나의 반격이 시작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