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로윈 밤 서울 이태원 골목에서 압사 참사가 일어난 지 어언 한 달이 다 돼가고 이틀 후면 핼로윈보다 훨씬 큰 ‘땡스기빙(Thanksgiving)’ 명절이다. 미국인들이 연중 최대축제로 꼽는 추수감사절이지만 한국엔 ‘감사하게도’ 그런 명절이 없다. 한밤중 거리에 사람들이 또 운집할 염려가 없다. 한국인들은 이미 두달 보름 전에 조상전래의 한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을 쇠었다.
한국에서 영자신문 기자였지만 halloween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나는 40여년전 미국 연수시절 아파트 문을 두드리는 꼬마 도깨비를 보고 기절할 뻔 했다. 아이들이 분장하고 캔디를 얻으러 다니는(트릿-오어-트릭) 핼로윈 문화가 한국에선 엉뚱하게 어른들의 흥청망청 축제로 변했다. 미국에선 10월31일로 고정됐는데 한국에선 해마다 들쑥날쑥 한다. 올핸 주말인 29일이었다.
한국인들이 핼로윈에 이어 땡스기빙도 따라 할까봐 공연히 걱정된다. 한가위 때 겪은 귀성전쟁을 두달여 만에 또 치르려는 사람들이 있겠나 싶지만, 땡스기빙은 크리스마스를 거쳐 신년까지 이어지는 연말연시 대목의 출발점이다. 미국상인들이 한해 장사의 성패를 이 기간에 걸 정도다. 한국 상인들도 다분히 눈독 들일만 하다. 하지만 땡스기빙 다음 날의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까지 흉내 낸다면 낭패다.
미국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날 개연성이 가장 높은 날이 바로 블랙 프라이데이(블프)다. 업소 밖에서 밤새 기다린 쇼핑객들이 꼭두새벽에 문이 열리자마자 세일품목을 먼저 차지하려고 노도같이 뛰어 들어간다. 그 중 하나가 넘어지면 그에 걸려 넘어진 사람들이 계속 덮치면서 맨 밑에 깔린 사람들이 비명횡사하거나 다친다. 이런 사건이 월마트나 타겟 같은 전국의 대형 매장에서 매년 되풀이된다.
‘블프 사망자 집계(BFDC)’라는 끔찍한 웹사이트까지 등장해 해마다 사상자를 헤아린다. 2006~2018년 사이 44건의 블프 참사가 일어나 최소한 11명이 사망하고 109명이 다쳤다고 했다. 물론 모두 압사사고는 아니다. 물건을 놓고 쇼핑객끼리 주먹질이나 주차장에서 총질을 벌이기도 했고, 난동 부리는 고객들에게 경비원이 최루가스를 살포한 케이스도 있다.
‘감사 주기’라는 뜻인 땡스기빙은 ‘은혜 갚기’에서 연유했다. 플리머스 청교도보다 56년 먼저 플로리다에 도착한 800여 스페인인과 2년 전 버지니아에 도착한 영국인 38명도 감사예배를 드렸다. 청교도들이 땡스기빙의 효시가 된 까닭은 이들이 하나님께만 감사를 드리지 않고 자신들을 아사위기에서 구해준 왐파노악 원주민 부족을 초청해 사흘간 함께 먹고 마시며 보은축제를 벌였기 때문이다.
꼭 청교도 영향은 아니겠지만 미국인들은 ‘땡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한인들도 많이 동화됐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감사라는 말을 빼면 도무지 기도를 못할 정도다. 성경이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가르친다. 성경 전체에 감사라는 말이 170여 차례, 시편에만 75차례 나온다고 들었다.
성경뿐 아니라 많은 선현들도 감사를 칭송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감사는 고결한 영혼의 얼굴”이라고 했고, 존 밀러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있다”고 했다. 본 헤퍼는 “감사를 통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고 했고, 공자는 “친절하게 행동하라. 그러나 절대로 감사를 기대하지 말라”고 일렀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슬픔의 씨앗을 뿌릴 수 없다”는 노르웨이 속담도 있다.
그런데, “땡큐”라는 말을 자연스럽지 않게 하는 사람도 있다. 감사꺼리가 아닌 일, 감사해선 안 될 일에까지 감사한다. 지난 2017년 3월 세월호 희생자들의 분향소를 찾은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는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의 혼이 1,000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썼다. 사고로 죽은 아이들에게 “땡큐”라고 했다. 김정은이 선물한 풍산개 두 마리를 최근 ‘파양’한 후 논란이 일자 “6개월간 공짜로 길러준 걸 오히려 감사하라”고 강변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가르침을 너무 투철하게 실천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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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