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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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읽는 법’

2022-11-15 (화) 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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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꽃이 쓴 글씨
꽃이 꽃에게 보내는 쪽지
나풀나풀 떨어지는 듯 떠오르는
아슬한 탈선의 필적
저 활자는 단 한 줄인데
나는 번번이 놓쳐버려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고
나비를 정독하다, 문득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나비는 아름다운 비문임을 깨닫는다
울퉁불퉁하게 때로는 결 없이
다듬다가 공중에서 지워지는 글씨
나비를 천천히 펴서 읽고 접을 때
수줍게 돋는 푸른 동사들
나비는 꽃이 읽는 글씨
육필의 경치를 기웃거릴 때
바람이 훔쳐가는 글씨

나비는 우편배달부다. 이 꽃이 쓴 엽서를 싣고 저 꽃에게로 간다. 새는 산의 허리를 끊으며 직선으로 날지만, 나비는 언제나 삐뚤빼뚤 난다. 꽃이 주는 배달비가 언제나 꿀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꽃이 쓴 엽서가 아니라 나비를 읽으려 애쓰지만 나비의 문장은 금세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꽃은 나비의 날개에 쓰인 꽃가루 글자를 꼼꼼히 읽는다. 점자를 읽듯 끈끈한 암술머리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는다. 꽃가루 속 오랜 DNA 문장을 해독한 꽃송이마다 열매가 부푼다. 백악기 이래 시작된 나비와 꽃의 공진화가 지구 밥상을 차린다. 우리는 그 과육을 맛보며 뒤늦게 말한다. ‘참 달콤한 문장이었어!’ 반칠환 [시인]

<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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