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문가 에세이] 의처증 의부증

2022-10-27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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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는 왜 아내를 죽였을까?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인 데스데모나는 남편 오셀로장군의 오해와 눈 먼 질투에 희생된다. 아내에게 준 손수건이 어느 날 부관의 손에 들어가있는 것을 보게 된 오셀로의 의처증! 자신이 중상모략의 덫에 걸린 줄도 모른 채 결말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평소 오셀로 안에 숨어있던 열등의식이 외부적 요인과 결합하여 망상으로 발전하는 전형적 케이스다.

근거 없이 배우자나 연인을 의심하는 의처증/의부증을 정신의학에서는 질투형 망상장애라는 질병으로 분류한다. 망상은 환각과 다르다. 예를 들어 “외계인이 나를 화성으로 데려가려고 우주선을 타고 밖에 와있다.”면서 신발을 찾아 신는다면 ‘환각’,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관련된 것은 ‘망상’이다. 망상은 종류가 예닐곱 가지로 다양해서, 색정형 망상은 유명인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경우. 전화나 편지로 대상에게 접근하려 별별 노력을 다하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스토킹이라는 범죄행위가 된다.

자신이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믿는 과대망상, 자기 뱃속에 기생충이 우글거리거나 괴상한 냄새가 난다고 믿는 신체형 망상도 있다. 피해망상에 사로잡히면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공격당한다고 믿는 바람에 반복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고 경찰에 계속 신고하기도 한다.


연인의 부정을 의심하는 질투형 망상은 근거가 없는데도 불륜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다. 자기 생각을 정당화시킨다. 평소엔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극심한 감정 기복을 보이고 태도가 돌변한다. 배우자의 모든 행동을 확인한다. 어디 갔었어? 누구랑 갔어? 왜 전화 안 받아? 꼬치꼬치 추궁하듯 물어올 때 배우자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 ‘외도’ 라고 단정 짓는다. 나중엔 추궁의 정도가 지나쳐서, 누구랑 잤어? 어느 호텔이야? 까지 나오기도 하며, 증상이 오래 될수록 폭력적으로 변한다. 스펌 테스트(옷에 묻은 정액을 검사하는 시약), 도청, 녹음, 협박을 일삼고 배우자를 미행하거나 가둬놓거나 신체적 폭행으로 발전한다.

질투 망상은 왜 생길까? 여러 원인이 있으나 심리적으로는 본인이 불륜을 저지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런 욕망이 죄책감을 일으키고, 여기서 벗어나려 상대방이 불륜을 저지른다고 믿는 망상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평소 열등감에 억눌려 있다가 배우자를 통해 자존심에 상처가 나면 불평과 분노가 쌓이고 이것이 병적인 형태로 분출되면 의처/의부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성장과정의 문제도 있다.

지나치게 지배적이거나 적대적인 부모 밑에서 공포심을 느끼거나 학대를 받은 경우, 심리적 영향을 받기 쉽다. 또한 배우자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할 때, 자신의 사랑이 확실치 않거나 배우자의 사랑에 자신이 없을 때, 그 마음을 상대방에게 투사함으로써 병적 의심을 만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이런 환자에게 조목조목 근거를 따지고 들면 오히려 더욱 심하게 화를 내거나 의심을 키우는 바람에 상대 배우자들은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느낀다.

한편 노인들의 알츠하이머로 인한 의처/의부증은 망상의 내용이 약간 다르다. 이들은 의심 내용에 항상 같은 스토리가 반복된다는 특징이 있다. 폭력적 질투 망상 뿐 아니라 과대망상이든, 피해망상이든, 자기 모습 그대로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망상장애로 변질되는 걸까? 사람은 참 약하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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