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실패 위험에 처한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략

2022-07-11 (월) 파리드 자카리아
크게 작게
“적과의 첫 교전에서 살아남는 전략은 없다.”

위대한 전쟁 이론가인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지론에 따르면 군사전략은 역동적이어야 하고, 늘 변화하면서 스스로 혁신을 해야 한다. 그는 ‘전쟁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일부 장군들은 “단지 일방적인 군사행동만을 생각하지만 전쟁이란 계속 이어지는 적과의 상호작용”이라고 강조했다. 서방측은 러시아와의 싸움에서 이같은 교훈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실패 위험에 처한 그들의 전략을 조정해야한다.

서방측 전략의 핵심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훈련 및 전비를 지원하는 한편 러시아를 상대로 대규모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두 갈래 전략인 셈인데 그 기본적 아이디어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둘 사이의 균형에 변화를 주어야 하다. 러시아를 상대로 한 경제 전쟁이 생각했던 것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경제 제재로 러시아 국민이 겪을 고통보다 국가가 얻을 이익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블룸버그 뉴스는 치솟는 에너지 가격 덕분에 올해 러시아의 오일과 가스 판매수입이 전쟁전인 2021년의 2,360억 달러에서 2,85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유럽은 50년래 최악의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러시아와의 경제전쟁에서 나타난 기본적인 문제는 필자가 전에도 지적했듯, 에너지를 제재대상에서 제외시킨 점이다. 러시아 경제는 근본적으로 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오일과 가스 수입이 러시아 정부 예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상황에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의 전면중단은 서방측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세계 시장에 공급이 줄어들면 추가 가격 상승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위험스런 의존을 지속해온 유럽은 갑작스레 방향전환을 시도할 경우 장기적인 침체의 늪으로 깊숙이 가라앉게 된다.

지난해 초에 비해 천연가스 가격이 700%나 치솟은 유럽대륙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여겨보라. 독일이 러시아 천연가스의 대부분을 공급받는 노드 스트림 1 파이프라인은 7월11일 정비목적으로 잠시 폐쇄된다. 푸틴은 독일 비롯한 서방국들을 혼내줄 목적으로 가스관을 다시 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거의 틀림없이 경기침체를 맞이하게 된다. 푸틴의 전략은 시간을 벌어가며 서구에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경제적 고통이 커지면 서방측의 연대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서방국들은 아직도 이같은 도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거대한 가스전을 지닌 네덜란드는 생산을 줄이고 있다. 게다가 독일 역시 자멸적인 탈원전 정책을 뒤집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천연가스와 오일에 장기 투자를 하는데 필요한 금융대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란 핵 협약을 복원할 경우 세계 원유시장으로 새로운 오일이 공급되면서 거의 틀림없이 가격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은 아직도 길을 못 찾고 있다. 물론 이런 모든 정책에 대한 정당한 반대와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필자 또한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서방세계의 최우선 순위는 푸틴을 꺾는 것이다.

푸틴의 진짜 취약점은 전선에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확대했지만 호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수천 명의 러시아군이 전사했고, 군수물자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보충병을 모집하기 힘들다. 이코노미스트는 신병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 정부가 중간임금의 세 배를 제시하며 모병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대체가 불가능한 심각한 무기 손실로 고통을 겪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방세계의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군장비는 보충이 안 된다. 최근 지나 레이몬도 상무장관은 우크라이나군이 빼앗은 러시아 장비에서 냉장고와 식기 세척기에서 떼어낸 컴퓨터 칩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서방 지도자들은 경제 제재가 그들이 작성한 시간표에 맞춰 효력을 발휘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선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가능한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러시아보다 서구에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는 경제 제재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확대하는 등 추가 위험부담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오데사 주변의 봉쇄를 푸는 것은 우크라이나에게는 커다란 경제적 승리를, 러시아에는 엄청난 상징적 패배를 의미한다.

겨울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유럽의 가정은 충분한 난방 없이 겨울을 나야할지 모른다. 일단 눈이 쌓이면 우크라이나는 참호전을 펼치는 러시아군을 물리치기 어려워질 것이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리드 자카리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