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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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먼저야’, 알기나 해!

2022-06-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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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화면에는 자국민을 철수시키려고 속속 착륙하고 있는 세계 유수 국가들의 민항기들이 비쳐지고 있었다. 서로 먼저 타려고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 공항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 사이 아메리칸 에어라인 AA 로고가 선명히 드러나 보인다. JAL기의 모습도.

그 분의 시선은 화면에 고착돼 있었다. 이윽고 나타난 것이 대한항공(KAL) 여객기였다. 한 대가 착륙했다. 또 다른 KAL기가 내렸다. 순간 그 분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주 가깝게 지냈던, 그리고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 한 독립유공자 가족의 이야기다.

아주 어릴 적 온 가족이 상하이로 이주했다. 3.1 운동 다음 해인가 망명의 길을 떠난 것이다. 그 무렵 10여 살에 불과한 어린 소녀였던 그 분은 망명생활의 고난 같은 것은 몰랐다고 했다. 상하이는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에게 별천지였을 따름이었다.


자주 찾던 곳이 상하이항 부두였다고 했다. 작은 사변 비슷한 소동이 날 때 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상하이항에 입항한 외국의 군함들. 그리고 열을 지어 행진하는 장병들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서다.

“또 한 번 소동이 나고 며칠 후인가 외국군함들이 상하이 항에 들어왔지. 또래의 사촌언니와 아침 일찍부터 구경을 갔었어.” 계속 군함에서 내리는 외국 장병들, 그 광경을 보면서 우리나라 군함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고 했다.“그렇게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결국 해가 졌는데도 한국 군함은 들어오지 않는 거야. 언니와 둘이서 그만 부둥켜 앉고 울고 말았지.” 계속되는 그 분의 회고다. 어린 나이지만 그 때 처음 망국의 서러움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그분은 정처 없는 삶을 살아왔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겪었다. 감격의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이내 덮친 것이 6.25였다. 뒤따른 것은 피란생활이었고 잠시 안정을 찾은 듯 했다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1990년 8월의 어느 날 TV를 보다가 근 70년 전 상하이에서의 그 때가 떠올려지면서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다.

어린 소녀시절 해외의 망명지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내 나라’, 그 대한민국의 실재를, 전쟁으로 난리가 난 먼 쿠웨이트에서 한국인을 철수시키기 위해 날아온 대한민국 국적기를 통해 뒤늦게 새삼 발견하고 그만 낙루를 하고 만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사라졌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이 2년 만에 재조명을 받고 있다. 분노가 치민다.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전개되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북한군 총격사망사건 보도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서해 어업지도선에 근무하던 이씨가 실종된 것은 2020년 9월 21일이다. 다음날 표류하던 이씨를 북한 경비정이 포착, 심문했다. 북한군은 상부지시에 따라 이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그 자체가 반인륜적 범죄행위다.


더 엽기적이고 가증스러운 것은 당시 대통령 문재인은 대한민국 공무원인 이씨가 사살되기 3시간 전 실종사실에 대한 서면보고를 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종된 이대준씨가 표류 끝에 북한군에 포착되고 심문 끝에 사살되고 그 시신이 불태워지기까지 6시간.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존재한 것은 권력자였다. 자국민이 위험에 처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도 살려내는 것이 국가이고 대통령의 책무다. 피살된 공무원 이대준씨에게 그러니까 ‘나의 나라’는 없었다. 대한민국은 사라졌던 것이다.

이후의 상황은 더 기가 막힌다. 권력과 그 주변의 무리들은 북한군에게 비참하게 살해된 대한민국공무원을 월북자, 나라의 배신자로 몰아갔다. 그리고 군과 경찰(해경)은 그 조작극의 꼭두각시 역할을 아주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사건 2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부재(不在)상태로 보인다. 적어도 문재인과 586으로 지칭되는 문재인의 사람들에게는.

은폐를 넘어 증거를 조작해 공무원 이씨를 탈북자로 몰고, 자진월북으로 수사를 종결하도록 권력의 핵심부 청와대가 압력을 행사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아니고 또 그게 뭐 어떠냐는 인명을 경시하는 발언을 거대야당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함부로 배설해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헌법이 부여한 가장 큰 책무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한 개인이 지니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외면하는 그들의 인식세계에는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해수부공무원 피살사건뿐이 아니다. 이보다 앞선 탈북어민 강제 북송사건도 그렇다. 통치행위가 아닌, 대한민국국민(탈북자는 헌법상 바로 대한민국국민이다)을 사지로 몬 악랄한 범죄행위에 가깝다.

문재인 권력은 왜 서슴지 않고 이런 반인륜적 만행을 거듭해왔나. ‘사람이 먼저’가 아닌, ‘김정은 먼저’의 광신적 미몽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을 기쁘게 한다면 대한민국 공무원을 인신공양을 하는 정도야…’하는 멘탈리티의 소유자들이 그들인 것이다.

표류중인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되고 그 시신이 불태워졌는데도 김정은이 보낸 서신 한 쪼가리에 감읍해 호들갑을 떤 문재인의 행태가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정은 대변인 정권’이 저지른 인권과 안보적폐 청산. 이는 국민이 윤석열 정부에게 부과한 소명이자 동시에 ‘실종된 대한민국을 되찾는 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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