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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쓴 가장 위대한 20세기 소설’

2022-06-21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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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쓴 가장 위대한 20세기 소설’로 평가받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1904년 6월 16일 하루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평범한 신문 광고 영업사원인 레오폴드 블룸이 집을 나와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의 정신적 아들 스티븐 디덜러스를 만나 함께 모험을 한 후 결국 아내 몰리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줄거리다.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일상적인 이 이야기에 작가는 조국 아일랜드의 역사와 신화, 정치는 물론 가톨릭의 교리에서 셰익스피어 문학 등 세상에 관한 온갖 잡동사니 정보를 빼곡이 채워넣어 장장 700 페이지가 넘는 대작을 완성했다. 아무 설명없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수많은 고유 명사와 에피소드, 인용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만큼 두꺼운 해설서를 읽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소설 또한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같이 조이스의 다른 소설처럼 자전적이기 때문에 조이스 전기의 결정판이자 전기 문학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리처드 엘먼의 ‘제임스 조이스’도 반드시 읽어야함은 물론이다. 이토록 어려운 소설이 한 때나마 미국과 영국에서 음란물로 판금됐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제목 ‘율리시즈’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다른 이름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트로이 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10년 동안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방황했던 오디세우스 이야기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평범한 직장인 레오폴드는 오디세우스, 아내 몰리는 페넬로페, 스티븐 디덜러스는 텔레마코스의 재탄생이고 이들은 20세기 더블린에서 아득한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 신화에 등장한 인물들이 한 일을 재현한다.

재현도 그냥 막연한 재현이 아니라 오딧세이에 나오는 모든 에피소드가 ‘율리시즈’에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로 치밀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조이스는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비범한 신화의 세계와 다르지 않으며 보통 사람인 우리 모두가 신화의 영웅들이 한 일을 재현하며 살고 있음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이 작품은 3부에 걸친 18개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마지막인 ‘페넬로페’는 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브롤터에서 레오폴드와 만나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그녀의 기억과 꿈이 섞인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의 백미로 ‘yes I said yes I will Yes’라는 생에 대한 강한 긍정으로 끝맺는다. T S 엘리옷은 “이 책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표현을 담고 있다”며 “우리는 모두 이 책에 빚졌으며 아무도 그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고 썼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는 1882년 더블린에서 한 때는 부유했지만 재산을 탕진한 존과 메리 사이에서 3남7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인 클롱고우즈 우드와 벨베디어,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한 때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04년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훗날의 아내 노라 바나클을 만나 문학의 길을 가기로 하고 아일랜드를 떠나 오스트로-헝가리의 영토였던 트리에스테와 취리히, 파리를 전전하며 1922년 ‘율리시즈’를 완성했다. 그가 ‘율리시즈’의 시점으로 택한 1904년 6월 16일이 그가 노라와 만난 날인 것을 보면 그의 삶에서 노라가 차지한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지적 수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다.

벌리츠 학원의 영어 강사로 생계를 꾸렸으나 살림은 어려웠고 훗날 후원자들이 나타나며 형편은 조금 나아졌지만 조이스의 낭비벽으로 돈은 항상 모자랐다. 설상가상으로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조지오는 생활 무능력자로 부자 이혼녀와 결혼해 생계를 이어갔고 딸 루시아는 정신병이 도져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조이스는 ‘율리시즈’를 완성한 후 장장 17년에 걸쳐 그의 마지막 작품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완성하고 그의 59세 생일 한 달 전인 1941년 복막염으로 사망한다.

‘율리시즈’도 어렵지만 그나마 영어로 쓰인 반면 ‘피네간의 경야’는 영어에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라틴어를 섞어 만든 그만의 새로운 언어로 쓰인데다 내용도 꿈속의 독백 같은 몽환적인 이야기라 보통 사람이 읽고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여주인공 안나 리비아 플러러벨이 리피 강으로 변해 바다로 흘러들며 자신의 소멸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모든 개체의 삶은 생명이라는 영원한 패턴의 반복이며 따라서 죽음도 수용할 수 있다’(acceptance of death because of permanence of life)는 저자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율리시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조이스의 삶과 문학을 생각해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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