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은 물가의 고삐를 잡는 것이 자신의 ‘최우선 국정과제’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말과 다르다. 인플레이션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분명한 정책도구들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는 사용을 꺼리는 눈치다.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부과한 대부분의 관세를 폐기하는 것이 단기간에 물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는데도 그는 묵묵부답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관세는 해당 수입품을 구입하는 미국의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세금이다. 이같은 특성 탓에 관세는 늘 물가상승을 부채질 한다. 예를 들어 관세는 수입용 자동차의 가격을 올려놓는다. 하지만 단지 수입품만이 아니라 국내에서 만들어진 동일한 상품의 가격까지 덩달아 뛴다는 점에서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크다. 만약 마즈다가 판매가격을 올리면 포드와 제네럴 모터스도 덩달아 자동차가격을 인상하려 든다. 물론 역 논리도 성립된다. 관세인하는 관세를 새로 부과하거나 인상하는 것만큼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불러온다. 마즈다의 가격이 떨어지면 포드와 GM도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가격을 낮추게 된다.
페터슨 국제경제학연구소는 지난 3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관세의 대부분을 철회할 경우 국내 물가상승률을 1.3% 포인트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경제위기 타개책과 관련해 이미 여러 차례 탁월한 식견을 과시한 바 있는 워싱턴포스트지의 객원 칼럼니스트 로렌스 H. 서머스도 무역장벽 축소는 가까운 장래에 인플레이션을 경감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미시경제적 조치라며 보고서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축소에 필요한 두 번째 조치로 이민개혁을 꼽았다. 인플레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이야말로 농업, 건설과 헬스케어 분야의 심각한 일손부족 현상을 초래한 트럼프의 이민제한조치를 원위치로 되돌려 놓아야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사실 자체나 논리가 아니다. 이런 주장의 정당성에 대해 그 누구도 심각한 반대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선거전을 치르는 동안, 바이든은 트럼프가 중국에 부과한 관세와 그의 이민정책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백악관 입성 후, 바이든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사로잡힌 겁먹은 사슴처럼 무기력하게 행동했다. 중요한 정책 변경이 자칫 공화당의 무차별 공세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런 식의 방어적 움츠림은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에서도 드러난다.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은 트럼프가 미국 정치의 위험한 변종이고, 그의 정책은 주류에서 멀찍이 벗어나있다고 누누이 강조하며 자신이 당선되면 미국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첫 주에 바이든이 그의 공약대로 관세 전쟁을 끝내고, 이란 핵협약에 재가입하는 한편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복원시켰다고 상상해보라.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거의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중요한 이슈에 관한 한 여전히 트럼프의 세계에 살고 있다. 만약 그가 약속을 지켰다면 집권 초기에 약간의 정치적 대가를 치렀을 수 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을 터이고, 남은 임기 중 보다 분별력 있는 정책들을 풍성하게 수확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2016년 트럼프가 거둔 초박빙 승리에서 잘못된 교훈을 배웠다. 민주당은 백인 근로계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보호주의와 중상주의로 대표되는 트럼프식의 경제정책을 유지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트럼프 유권자들을 움직인 것은 대체로 문화적인 이슈였다. 론 드산티스, J.D. 반스와 메흐메트 오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취소 문화(cancel culture), 성정체성, 의식화된 기업에 이어 이제 낙태에 대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어보라. 그 영역 안에서, 민주당은 그들의 말을 더 들어보고, 거기에 맞춰 말과 행동을 조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경제 분야의 경우 유권자들은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데, 바이든은 관세를 축소하고 특정한 이민 제한을 완화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의 최대 피해자는 빈민과 중하층에 속한 서민들이다. 국제교역 덕분에 가격이 떨어진 음식과 의복 같은 아이템 구입에 사용하는 지출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위소득 계층 소비자들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월마트에서 값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연소득 30만 달러인 사람보다 3만 달러인 사람에게 훨씬 큰 도움이 된다.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로 촉발된 40년래 최악의 인플레는 특히 저소득 그룹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까지 나온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관세 또한 고소득자보다 저소득자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역진세의 성격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수십 년간의 자유무역이 중산층의 임금 정체와 근로계층의 고통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그 같은 견해는 자유무역이 삶의 중요한 측면인 음식, 의복과 테크놀로지의 비용을 극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축소하는데 이바지한 어마어마한 공로를 편의적으로 배제한다. 우리는 지금 경제의 풍향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물가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목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화에 약간의 향수를 느끼게 만들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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