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든의 러시아 제재는 양날의 칼

2022-05-16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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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개리 클라이드 허프바우어와 메건 호건이 지난 3월 에세이를 통해 지적했듯, 러시아 제재는 2차 세계대전 이래 주요국에 가해진 가장 포괄적인 조치이다. 허프바워와 호건은 이번 제재가 “1에서 10까지의 징벌 등급 가운데 최소한 8”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례가 없는 이같은 조치들은 미국이 경제력을 ‘무기화’했고, 이로 말미암아 미국에 경제적 초강대국의 지위를 부여한 달러화의 점차적인 지배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필자는 세 명의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뉴델리의 첫 번째 소식통은 인도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전해주었다. 주된 토픽은 미국이 러시아에 했던 것과 같은 조치를 인도에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 였다. 브뤼셀의 두 번째 소식통은 워싱턴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 제재 관련 업무를 수행 중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수입 과정에서 달러화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아시아인으로 중국통인 세 번째 소식통은 식품과 기본생필품 배급제를 포함하는 베이징의 엄격한 상하이 봉쇄조치는 (아마도 대만침공 이후) 워싱턴의 경제제재라는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실험의 일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세계는 국제금융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한 달러화의 지배력이 기울어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토론을 벌이고 있다. 골드만 삭스와 IMF조차 그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견해에 다소 회의적이다. 효과적인 대안이 마련됐을 때에 한해 달러화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처럼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은 물론 인도와 브라질 같은 우호적인 나라들마저 워싱턴의 변덕에 대비해 그들의 취약점을 축소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이들의 노력이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글로벌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년 사이에 72%에서 59%로 줄어든 것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부분적인 이유는 미국이 지닌 특권을 워싱턴이 예전보다 불안정하고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휘두르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침공 이전의 20년 동안, 워싱턴은 온갖 이유로 제재 조치를 900% 이상 늘렸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과잉반응으로 해제해야 마땅하다. 9/11 이후, 워싱턴은 테러리스트들에게 흘러들어가는 돈을 추적하기 위해 지나칠 만큼 강압적인 조치를 취했다. 워싱턴은 미국의 제재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금융기관에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큰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무언가 하기 원하는’ 국내 비평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미국은 이란, 베네수엘라, 북한, 쿠바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 제재조치를 단행했다. 워싱턴은 이런 타입의 경제전쟁을 통해 해당 국가의 정권을 교체하는데 실패한 대신 그곳에 거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와 달리 러시아에 가한 제재는 정권교체가 아닌 정책변화를 노린 것이기에 한층 효과적일 수 있다.

경제 제재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급격하게 증가했다. 당시 미국은 유엔이 제시한 틀 안에서 이뤄진 합의 내용을 테헤란이 준수했음에도 이란 핵 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여기에 보태 미국의 규제당국과 판사들도 제재조치를 어긴 외국 기업들에게 벌금을 물렸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프랑스 은행인 BNP 파리바에 부과한 거의 90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이다. 이런 조치들이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달러의 힘 덕분이었다.

필자는 러시아 제재를 지지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공개 연설을 통해 제재조치들을 조목조목 설명해야한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룰에 기반한 국제 시스템에 가해진 수십 년 래 최악의 공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러시아의 공격이 성공할 경우 기존의 국제 시스템은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 워싱턴이 우방들과 함께 비상조치를 취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은 미국과 우방국들의 취한 행동의 법적근거를 상세히 밝힐 필요가 있다.

설사 소유주가 러시아의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라 하더라도 타국 정부가 개인이 확실한 소유권을 지닌 자산을 어떻게 압수할 수 있는가? 이런 권한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맞먹는 심대한 국제법 위반행위가 발생할 때에 한해 이 같은 비상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한다.

미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를 갖고 있기에 달러는 국제 시스템에서 중요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동적인 채권시장을 지니고 있고, 달러화는 자유롭게 유통되며, 미국은 임의적, 혹은 일방적 행동이 아니라 법의 지배에 기반을 둔 국가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미국은 마지막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싸움이 미국의 유일무이한 금융 수퍼파워의 지위를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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