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을 여성의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로우 vs. 웨이드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미국이 또 한 차례의 문화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가운데, 필자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에서 훨씬 격렬한 가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와, 서로 경쟁하는 진영 사이의 견해차가 이전보다 크게 벌어진 이유가 궁금했다.
2020년 경제부국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퓨 리서치센터의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다양한 문화적 쟁점에 관해 미국만큼 심각한 정치적 견해차를 보이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지금의 문화적 전통과 생활 방식을 그대로 고수할 경우 앞으로 당신의 나라가 더욱 부강해질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익에 속한 미국인들의 65%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좌측에서 나온 동일한 답변은 6%에 그쳤다. 둘 사이에 무려 59% 포인트라는 뛰어넘기 힘든 간격이 가로놓여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서 두 진영사이의 이견차이는 19% 포인트에 머물렀다. 기독교인이라는 점이 해당국 시민의 중요한 측면이냐는 질문에 우익과 좌익 진영 미국인들 사이의 견해 차이는 23포인트로 나타난 반면 영국의 경우 7포인트에 불과했다.
27개 경제부국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도 퓨리서치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가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담당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미국의 경우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응답자들의 71%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진보주의자들의 29%만이 그들의 견해에 동의했다. 42% 포인트에 달하는 양 진영 사이의 차이는 전체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컸다. 이 같은 수치는 미국에 이어 공동 2위를 기록한 캐나다와 폴란드의 진영 간 격차에 비해 17포인트가 높았고, 스웨덴과 독일의 좌익과 우익간의 차이의 네 배였다. 보수적인 영국인의 35%가 종교가 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기 원한다고 밝힌 반면 반대 의견은 28%로 둘 사이의 차이는 7포인트였다.
미국은 왜 이렇듯 유난스런 양극화 현상을 보이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세계화, 테크놀로지 변화, 이민 등이 부분적인 원인으로 꼽히지만 이들은 미국에서만 진행 중인 일이 아니다. 사실 국가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을 세계화의 척도로 사용한다면, 미국은 유럽의 다른 많은 국가들에 비해 세계화가 덜 된 상태다. 이민도 마찬가지다. 전체 인구에서 외국태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캐나다와 스웨덴이 미국보다 높다. 테크놀로지 변화 역시 어느 곳에서나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종교의 갑작스런 쇠퇴”를 쓴 사회과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 잉글하트는 우리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문화적 변화는 대다수 국가에서 종교적 신앙이 쇠퇴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1981년부터 2007년까지 종교적인 태도에 관한 서베이 자료를 분석한 잉글하트와 그의 동료 학자 핍파 노리스는 이 기간에 대다수의 조사 대상 국가들이 더욱 종교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2000년에서 2020년 사이에 “이들 중 절대다수가 이전보다 비종교적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연구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국가는 미국이다. 오랫동안 미국은 부유한 선진국가도 종교적인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예외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은 진행 경로를 극적으로 뒤집었다. 잉글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2007년 이후 미국은 관련 자료가 입수된 다른 어떤 국가보다 급속하게 세속화했다.” 게다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기준을 적용할 경우 미국은 세계에서 12번째로 신앙심이 낮은 국가에 해당한다.”
이같은 세속화 과정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대개 집단적 통제 규범의 약화와 개인주의의 급속한 부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변화는 양극화 심화와 서로 겹친다. 빠른 세속화와 이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한데 공존하는 미국의 현재 풍속도다. 거대한 변화는 거대한 반응으로 연결된다.
이외의 다른 요인도 있다. 늘 그렇듯, 미국에서 인종관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바로 여기가 다른 국가에 비해 좌익과 우익 사이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의 새로운 현실에 집중적인 조명을 가한다. 이젠 표준이나 평균만 들여다보아선 미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은 두 개의 나라가 되었다. 이들 중 하나는 도시에 거주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다인종집단이 주축을 이룬 세속적인 중도좌파의 국가다. 다른 하나는 지방에 거주하고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종교적인 백인 주축의 중도우파 국가다.
잉글하트와 크리스천 웰젤은 가치에 관한 질문에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에 따라 비슷한 반응을 보인 국가를 한데 묶어 표시해 놓은 문화지도를 작성했다. 2020년 현재, 문화 지도상에서 서방세계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있는 미국은 스웨덴과 덴마크보다 우루과이와 베트남에 더 가까이 위치한다. 그러나 미국을 레드와 블루의 두 개 국가로 분리한다면 블루 아메리카는 북유럽 개신교국가들 사이에 편안하게 섞일 것이고, 레드 아메리카의 문화적 가치는 나이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쪽으로 바짝 다가설 것이다.
미국의 정치적 미래에 관한 중요한 질문은 이렇다. 과연 이들 두 개의 미국이 함께 살고, 일하고, 협력하며 서로가 서로를 용인할 수 있을까? 만약 아니라면, 낙태 전쟁은 더 큰 투쟁의 전조가 될 수 있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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