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과 여야,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하며
2022-03-24 (목)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정권 인수 과정이 진행되면서 향후 새 정부와 국회와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번 대선에서 양대 후보 간 득표율 차이가 불과 0.73%포인트의 초박빙이었다는 사실과 아직 임기를 2년여 남겨둔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72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향후 전개될 여소야대 상황에서 민주당이 순순히 새 정부의 요구에 응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려운 앞길을 모를 리 없는 윤석열 당선인은 국회 존중과 국회와의 협치를 강조했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내세운 ‘국민통합정부’ 공약을 확인하듯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또한 과거 민주당계 정당에 몸담았던 비중 있는 인사들을 정권 인수 조직 등에 다수 포진시켜 나름대로 중도 지대로의 외연 확대와 사회적 통합에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거대 다수당으로 자리 잡고 있는 국회를 상대해야 하는 윤석열 정부의 앞길이 순탄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국면에서 국회와 새 정부가 협치하면서 국정이 원만히 운영되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19 극복과 민생 안정이 급선무인데 새 정부와 민주당이 사사건건 첨예하게 대립해 교착상태가 기약 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정부 및 여당과 민주당 간에 밀고 당기기와 주고받기를 통해 사안별로 타협이 이뤄져 파국만은 피해가고 민생 문제에서 협력해가는 모양새일 것이다. 그런데 여야 대치의 교착상태라는 덫에 빠지지 않고 그나마 공이 앞으로 굴러가는 이 시나리오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붙는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여야 지도부가 모두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 각자 자신의 진영과 자기 당의 의원총회를 설득하고 때로는 압박함으로써 양대 진영에서 강성 논리가 득세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영 논리를 제어하는 통합적 리더십이 말같이 쉽지만은 않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의민주주의는 다수결을 통해서 집권 세력이 선택되고, 집권 세력이 되고자 하는 정당은 우선 지지층부터 단단히 결집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양당 후보는 진영의 분위기에 따라 자신의 태도와 정책적 좌표를 바꾸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 대선은 정말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진영 정치의 논리에 휘둘린 네거티브 선거 그 자체였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양당 후보 모두 국민통합정부를 외쳤고 대선 직후부터 여론과 언론은 한목소리로 국민통합을 주문하지만 통합에 대한 정치권의 응답은 자칫 의례적인 것으로 그치기 쉽다.
과거 우리 정치를 돌이켜보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자기 진영을 설득하면서 지지자들을 이끌어왔다기보다는 오히려 진영에 이끌려가거나 혹은 이러한 진영 논리를 활용해 운신의 폭을 넓혀온 측면이 있었다. 강성 논리가 지배하는 진영 정치에 정치 지도자들이 끌려다녀서는 국민통합정부나 대통령과 국회와의 협치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일찍이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의 ‘혁구습장(革舊習章)’에서 초학자들이 혁파해야할 구습 가운데 ‘같은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싫어하는 것’ 그리고 ‘무리에서 벗어날까 두려워하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늘 상대방을 원망하고 적대시하는 열혈 지지자에게서 벗어날까 두려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하는 리더십이 먹혀드는 한 국민통합정치는 요원하다.
국민주권이 직접 표출되는 선거는 분명 민주주의의 꽃이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가 민주주의를 독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상시적 선거 모드가 우리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절박한 민생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영을 설득하고 양식 있는 시민을 바라보면서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앞으로 견인해내는 통합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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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