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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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을 멈춰 세울 결정적 제재

2022-03-07 (월) 파라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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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승자를 가리는 일만 남았다.

조 바이든은 서방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결속을 끌어냈고, 주요 경제국인 러시아에 역대급 제재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주식시장이 뿌리째 흔들렸고, 루블화는 거의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역사는 단순한 경제 제재만으로는 대상국의 정권교체는커녕 정책노선 변경조차 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과 이란의 핵 개발계획에 경제제재가 부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이 정도의 효과를 끌어내려면 단호하고도 포괄적인 제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중국, 인도와 페르시아만 연안국을 포함한 일부 주요국들이 러시아 보이코트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제재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속셈을 뒤흔들어 놓을 길이 하나 있기는 하다. 러시아의 오일과 가스 산업에 제재를 가하면 된다. 오일과 가스는 푸틴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이들은 러시아 국부의 원천이자 푸틴이 ‘믿는 구석’이다. 오일과 가스는 이제까지 나온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미국이 내놓은 금융제재는 러시아가 계속 에너지 수출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었다.

러시아산 연료에 제재를 가하면 1970년대의 에너지 위기가 재발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내국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유추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은 오일과 가스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게다가 지금 당장에라도 국내 생산량을 늘리거나 다른 국가들의 생산시설 가동을 도울 수 있다.

바이든은 미국산 원유의 신속한 생산과 수출을 확대해 러시아 에너지를 대체함으로써 국제질서를 겨냥한 중대한 도전에 결연한 대응의지를 밝혀야한다. 국내 천연가스 생산을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액화천연가스를 유럽에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일본과 한국처럼 대체에너지원을 보유한 국가들이 더 많은 액화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돌리도록 장려해야한다. 이들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하는 조치들이지만 시장은 대통령이 보낸 신호와 늘어날 공급량에 반응할 것이고, 결국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바이든은 두 개의 거대한 에너지 공급원에 찍힌 봉인을 해제해 이들이 충분한 양의 연료를 신속히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한 제재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능하다면 이란과의 협상을 통해 한껏 좁혀진 이견차를 해소하고 이란 핵협약에 재 가입함으로써 이란산 오일의 시장복귀를 허용해야 한다.

또한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빈 살만, 아랍에미리트의 보하메드 빈 자예드에게 직접 손을 내밀어 냉랭해진 관계를 개선하고 이들의 원유 증산을 유도해야 한다. 이들은 단기간에 원유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걸프협력회의 회원국이다.

우파와 좌파 모두 필자의 이 같은 제안에 격렬히 반대할 것이다. 예상되는 반대론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이렇다. 국내외의 증산을 통해 새로 공급될 가스의 대부분은 (금지된) 러시아 에너지를 대체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환경보호 이점도 있다. 미국산 천연가스는 러시아산에 비해 메탄가스 유출량이 적다. 따라서 미국산 대체 가스가 순 탄소배출량을 높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원유 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역시 러시아에 비해 낮다. 천연가스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독일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가장 더러운 연료로 꼽히는 석탄 사용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현 상황에서 탄소배출량을 단기적으로 줄이는 최상의 방법은 석탄을 천연가스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조치들은 한결같이 상징적이거나 실질적인 문제점을 지닌다. 그러나 다스리는 것은 선택을 하는 것이고, 위기상황에서의 통치는 어렵고 고통스런 선택을 뜻한다. 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노드 스트림 2 가스관을 정지시켰고, 두 개의 액화 천연가스 터미널 신설 계획을 밝혔으며, 석탄 사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고, 폐기 예정이던 원전들의 수명 연장이 불가피할지 모른다고 시인했다. 이 같은 정책을 발표한 독일 연정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지닌 정당이 환경보호를 외치는 그린 파티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수반되는 위험부담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고 강조했다. 맞는 얘기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된다. 따라서 그가 성공하도록 놓아두어선 안 된다.

아돌프 히틀러가 소련을 공격했을 때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였던 윈스턴 처칠은 “만일 히틀러가 지옥을 공격한다면 나는 악마를 두둔하는 칭찬거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비 러시아산 에너지에 지원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푸틴의 아킬레스건을 후려치는 치명적 무기가 될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라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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