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국 ‘5초 인공태양’ 참여 한국인 과학자 “꿈의 에너지에 접근”

2022-02-1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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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핵융합에너지청 김현태 박사, 유럽 물리학자들 이끌고 연구

▶ “한국 등 참여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불확실성 줄었다”

영국 ‘5초 인공태양’ 참여 한국인 과학자 “꿈의 에너지에 접근”

영국 핵융합에너지청(UKAEA) 김현태 박사 [김현태 박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꿈의 에너지이자 거의 유일한 미래의 대안인 핵융합 에너지 발전을 향해 한 걸음 접근했습니다"

영국 핵융합에너지청(UKAEA)의 김현태(41) 박사는 핵융합 에너지를 종전 실험보다 두 배 넘게 만드는 데 성공한 획기적인 실험 결과가 발표된 뒤 1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이와같이 말했다.

김 박사는 유럽 핵융합 전문가 컨소시엄인 유로퓨전(EUROfusion)과 UKAEA가 협력한 실험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연구진은 작년 12월 UKAEA의 세계 최대 핵융합 연구장치 제트(JET)를 5초간 운전해서 59MJ(메가줄)의 에너지를 생성하고 최근 그 결과를 발표했다. 5초는 JET의 구리 코일이 과열되기 전 한계선이다.

1997년 실험에서는 4초간 21.7MJ가 나왔다.

핵융합 발전은 태양과 같은 별이 에너지를 내뿜을 때 사용하는 원리와 같아서 '인공태양'으로 불린다.

'중수소와 삼중수소'(DT)가 초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융합해 헬륨과 중성자가 될 때 질량이 손실되며 에너지가 나오는 반응을 이용한다. 플라스마는 고체·액체·기체를 넘어선 제4의 상태다.

이를 위해 온도와 밀도 조건을 맞풔야 한다. 온도는 1억도 이상으로 올린 뒤 생성한 핵융합에너지를 이용해 유지해야 한다. 또 지구는 태양 보다 중력이 약하므로 자기장을 이용해서 플라스마를 가둬야 한다.

핵융합발전은 탄소 배출이 없고 원전과 달리 방사성 폐기물과 연쇄 반응이 없어서 안전하다는 점에서 기후변화 해법으로 꼽힌다.

주 연료가 바닷물과 소량 리튬 뿐이이어서 자원 고갈에도 대응할 수 있다.


이번 실험은 프랑스에 건설 중인 핵융합 프로젝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로 가는 징검다리다.

ITER는 유럽연합(EU)·미국·중국·인도·일본·러시아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도 지분을 약 9% 갖고 있다.

ITER는 2025년 첫 플라스마 발생 시험을 하고 2035년에는 DT를 이용한 본격 에너지 발생 실험을 할 예정이다.

김현태 박사는 "이번 실험은 ITER 시설·운영 계획 타당성 검증, 위험요소 감소, 최적화 시간 단축이 목적이었다"며 "실패했다면 ITER는 불확실성을 안고 출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에 없는 반응을 만들려니 복잡한 장치를 동시에 구동시켜야 하고, 조금만 고장나도 문제가 생기므로 조마조마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는 "중성입자 가열장치 16개 중 1∼2개를 못썼는데, 모두 가동해서 열을 더 가했으면 에너지가 더 많이 나왔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번 실험이 ITER와 가장 유사한 시설에서 ITER 방식으로 한 처음이자 마지막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이전과 가장 큰 차이는 내벽 소재가 탄소에서 ITER와 같은 베릴륨-텅스텐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탄소가 삼중수소를 흡수해버리는 점 때문에 2011년에 내벽을 교체했는데 이후 예상과 달리 성능이 낮아져서 원인과 해결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 작업에 참여해왔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임피리얼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년간 UKAEA에서 JET 관련 데이터 분석을 했다.

2015년부터 유로퓨전에서 JET 프로젝트 진행 총괄(reponsible officer)을 했고 2020년 UKAEA로 돌아와서는 JET 운전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는 팀을 맡았다.

그는 "코로나19 중에 유럽 과학자 20∼30명을 이끌고 원격으로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여러 나라가 ITER에 한 뜻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세계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시대 때도 핵융합 분야에서는 교류를 했다"며 "인류가 지속하는 데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제는 ITER의 첫 플라스마 발생 시험을 위한 모의실험과 영국의 핵융합발전소 프로젝트(STEP)의 장치 디자인 점검 등을 하고 있다.

영국은 핵융합발전에 도전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이미 시제품 건설을 위한 부지 선정에 들어갔다.

한국도 '케이스타'(KSTAR)로 핵융합 연구를 하고 있다. 김 박사는 "KSTAR와 JET는 스펙이 달라서 ITER에 다른 부문에서 기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핵융합발전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지만 기술 진보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이 짧았지만 큰 변화로 이어졌듯이 ITER 성공으로 실현가능성만 확인되면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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