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질지 여부를 알고 있는 인물은 이번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인 블라디미르 푸틴 단 한 명뿐이다. 이제까지 바이든 행정부는 전쟁억제력과 외교력을 적절히 구사해가며 푸틴의 도발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했다. 워싱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맞서 유럽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키예프에 무기를 추가로 지원했으며 일부 미군병력에 경계령을 발동함으로써 미국의 강경대응 의지를 과시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정부는 러시아가 벌이고 있는 이른바 ‘혼합전쟁’(hybrid warfare)의 다양한 전술을 일반에 공개하는 한편 침공을 단행할 경우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여기에 보태 워싱턴은 동유럽의 안보협정 논의와 관련해 미국과 러시아의 신뢰구축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병행했다.
지난주 필자는 전운이 짙게 드리워진 위기상황에서 러시아가 지닌 강점과, 무력시위를 통해 손에 쥘 수 있는 이익을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위기상황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선 러시아의 강점뿐 아니라 약점까지 동시에 들여다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정독을 필요로 하는 그의 에세이를 통해 오웬 매튜스가 지적하듯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연방에서 독립한 이후 노골적인 친 러시아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으로 양분됐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은 무력을 동원해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내분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로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운동을 활성화시켰고 반러시아 정서에 땔감을 제공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푸틴은 수백 만을 헤아리는 크리미아와 돈바스의 친 러시아 주민들을 정치적 미적분에서 제외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지역의 심각한 불안정성으로 인해 돈바스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친러시아 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석의 15%선으로 대폭 축소됐다.
돌이켜보건대, 푸틴의 목적이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고 허약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다면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겨두고, 그 지역의 정치인들이 모스크바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키예프를 압박하는 등 러시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제 오열’로 활동하게끔 지원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이 주류를 차지한 우크라이나에서는 반러시아 정서가 증폭되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힘을 빼서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한편 서방을 양분시켜 나토(NATO)를 무력화하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후자에 관한 한, 러시아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탈냉전 시대에서의 존재의미를 찾고 있던 나토는 러시아의 위협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덴마크는 발틱해에 구축함을 파견할 계획이고, 네덜란드는 전투기를 불가리아로 이동배치하고 있다. 프랑스는 나토의 지휘 하에 루마니아에 병력을 파병하겠다고 제안했고, 스페인은 전함을 동쪽으로 이동시킨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미국은 동유럽 배치에 대비해 8,500명의 군병력에 경계령을 발령했다. 게다가 핀란드와 스웨덴조차 오랫동안 표방해온 중립을 재고하고 있다.
푸틴은 독일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무장 강화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독일과 유럽에 직접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노드 스트림 2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취소에 강한 회의감을 표시했다. 이 같은 접근법은 러시아와의 특수 관계를 원하는 독일의 오랜 숙원을 반영하는 것으로 냉전시대에 독일이 추진한 이른바 ‘동방정책’(Ostpolitik)의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
동독의 주민으로 공산주의를 직접 경험한 앙겔라 마르켈 전 총리는 푸틴과의 거래에서 강경기조를 택했다. 그러나 그녀가 물러난 후 독일은 동구와 서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전통적인 과거의 입장으로 회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를 의식한 바이든 행정부는 윌리엄 J. 번스 CIA 국장을 베를린으로 보낸데 이어 바이든과의 회담을 위해 메르켈의 후임자인 오라프 숄츠를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매튜스는 특히나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푸틴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푸틴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비축했다지만,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 수출에 제동이 걸릴 경우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된다. 전쟁터에 나아가야할 러시아의 젊은 성인들 중 대다수는 우크라이나에 호의적이다. 그들은 키예프와의 무력충돌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전쟁이 불가능하다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전쟁은 오해와 오판 때문에, 심지어 당사국들이 긴장의 수위를 낮출 방법을 찾지 못한 탓에 발발할 수 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의 요구에 대한 서방의 서면답변은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이라는 ‘핵심 이슈’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나토회원국 자격 획득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나토는 전원합의체인데 우크라이나 이슈에 대한 합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특히 독일과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에 대단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합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뿐더러 배제해서도 안 된다. 이 두가지 현실 사이에 수년간 양측의 국력소모를 불러올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창조적 외교의 좁은 통로가 가로놓여있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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