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2022-01-04 (화)
이규리
사랑하는 사람이 침묵할 때
그 때의 침묵은 소음이다
그 침묵이 무관심이라 느껴지면
더 괴로운 소음이 된다
집을 통째 흔드는 굴삭기가 내 몸에도 있다
침묵이자 소음인 당신,
소음 속에 오래 있으면
소음도 침묵이란 걸 알게 된다
소음은 투덜대며 지나가고
침묵은 불안하게 스며든다
사랑에게 침묵하지 마라
귀찮은 사랑에게는 더욱 침묵하지 마라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건너편에서 보면 모든 나무들이 풍경인 걸
나무의 이름 때문에 다투지 마라
‘알고 보면’ 이규리
사랑할 때는 나란히 앉는다. 망원경으로 같은 별을 보며 미래를 꿈꾼다. 아득히 먼 길도 함께 걸으며 행복하다. 생활할 때는 마주앉는다. 현미경으로 상대를 보며 어제를 따진다. 가까운 슈퍼도 서로 안 가려다가 다툰다. 알고 보면 사소한 일로 다투지 큰 일로 싸우지 않는다. 다정하던 당신이 침묵하면 내 귓바퀴 속에 사물놀이패가 들어온다. 차갑던 당신이 다정하면 굴삭기 소리도 배경음악이 된다. 굴 딱지처럼 붙었던 입을 먼저 열어보자. 입안에 맴돌던 혀는 얼마나 부드럽고 향기로운가. 2021년, 알고 보면 사소한 것들의 한해가 저물어간다. [반칠환 시인]
<이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