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 관리도 자산 관리처럼 하면 된다

2021-12-09 (목) 이경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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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모으려면 과소비·낭비 줄여야 하듯

▶ 노화 막으려면 신진대사 낭비 줄여야…담배·술·당 독성·지질 독성 피해야

돈을 모으려면 과소비와 낭비를 줄여야 하는 것처럼 노화를 막으려면 신진대사 낭비를 줄여야 한다.

건강 관리를 돈 낭비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몸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신진대사를 함으로써 세포 노화를 촉진하는 것이 낭비다. 즉, 과도한 염증 반응이 생겨 이를 해결하려고 세포가 일을 많이 할수록 노화는 촉진된다. 염증 반응과 노화를 촉진하는 독성 물질을 멀리하는 것이 신진대사 낭비를 막는 길이다.

세포에 독으로 작용해 노화를 촉진하는 물질은 4가지가 있다. 우선, 담배다. 담배를 피우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노화가 10~15년 일찍 시작된다. 노화 정도를 나타내는 텔로미어 연구에서 이를 잘 나타내준다.


흡연하면 얼굴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주름이 많아지는 것 같은 단순한 피부 노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몸속 주요 장기의 노화다. 특히 혈관 노화는 심장 질환·암·뇌졸중·치매와 직결된다.

둘째, 술이다. 술을 마시면 혈관 건강이 좋아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를 살펴보면 대부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기준으로 적당히 마시는 사람과 많이 마시는 사람의 심장 질환 발생 관계를 알아본 연구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오류가 있다. 비교 기준이 되는 비음주자 그룹에는 몸이 좋지 않아 금주하는 사람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셋째, 당 독성(glucotoxicity)이다. 혈관이 핏속 설탕(혈당)으로 걸쭉해지면 면역 체계는 비상 사태가 발생한다. 혈관 벽에는 무수한 염증 반응이 생기고 이로 인해 동맥경화가 촉진된다.

당 독성 유발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술이고, 탄산음료·스포츠 음료·과일 주스 같은 가당 음료가 뒤를 잇는다. 밀가루·쌀가루로 만든 가공식품도 해당된다. 짠 음식도 식후 혈당 수치를 높이고 염증을 유발한다. 나도 모르게 짜게 먹는 것은 대부분 국물이다. 맛있는 국물은 뜨거워서 모를 뿐이다.

넷째, 지질 독성(lipotoxicity)이다. 지질 성분 중에서 트랜스 지방이 가장 심하게 독성을 유발한다. 맛있는 가공식품은 대부분 트랜스 지방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 바삭바삭한 맛은 대부분 트랜스 지방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영양 성분에는 트랜스 지방이 0g으로 표기될 수 있다. 그런데 트랜스 지방 함량이 0.2g 미만이면 0g으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보고서에서 트랜스 지방으로 인한 관상동맥 질환 사망자가 많은 상위 15개국 중에서 한국이 조치가 필요한 11개국에 속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빵·라면·치킨·감자튀김 등이 지질 독성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빵·라면은 밀가루 아닌가?’라고 고개를 갸웃할 수 있지만 맛있는 빵은 마가린·쇼트닝 같은 트랜스 지방이 포함돼 있다. 라면은 면을 기름에 튀긴 유탕면이다.

노화를 촉진하는 이들 4가지를 진료실에 오는 환자들에게 말하면 이를 4가지를 피하지 못하는 것을 후회한다. 반면 건강한 사람들은 이에 별 관심이 없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를 생각해보자. 베짱이처럼 여름을 짜릿하게 보내면 겨울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솝 우화에서는 아름답게도 추운 겨울날 개미가 베짱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따뜻한 식사를 제공한다. 하지만 기억하라. 우리 겨울은 그렇게 짧지도 않고 도와줄 이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이경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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