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필수품이 된 물건 하나를 들라면 GPS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웬만한 차에는 내비게이션이 장착돼 있고 차에 없더라도 스마트폰에는 구글 맵 등 GPS 장치가 들어 있다.
어떻게 우리는 이 편리한 도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일까. GPS는 원래 미 국방부가 군사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1973년 국방부는 인공위성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프로젝트 개발을 시작했고 1978년 이 목적으로 첫 인공위성이 발사됐으며 1993년 24개의 인공위성으로 이뤄진 GPS 체제가 완성됐다.
처음에는 군 전유물이던 GPS가 일반에게도 개방된 것은 1983년 일어난 KAL기 격추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상공에서 경로 이탈 후 계속 비행하다 격추된 이 사건은 항공기 정확한 위치 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줬고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행정 명령에 서명함으로써 GPS의 민간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GPS의 소유와 운영은 국방부가 맡고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든 제한이 가능하다. 보통 GPS는 16 피트 정도 정확도를 보이지만 L5란 특수 밴드를 사용하면 1피트 안쪽도 가능하다.
미국 이외에 다른 주요국들은 독자적인 GPS 망을 갖추고 있다. 러시아의 GLONASS, 유럽 갈릴레오, 중국 바이두, 인도 NavIC, 일본 QZSS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6개 개체가 모두 독자적인 로켓 발사가 가능한 우주 산업 강국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GPS를 사용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인 그의 업적은 많지만 그 대표적인 것은 ‘상대성 원리’다. ‘상대성 원리’에는 ‘특수’와 ‘일반’이 있는데 ‘특수’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와 관측체 사이의 관계, ‘일반’은 가속적으로 변화하는 관찰자와 관측체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론이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물체의 크기와 무게, 시간과 공간의 속도와 형태는 일정하며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관찰자와 관측체의 위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은 알아냈다. 언뜻 상식에 어긋나는듯한 이 주장은 그 후 무수한 실험에 의해 입증됐으며 이제 이를 의심하는 물리학자는 없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관찰자에 대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인공위성내의 시간은 정지된 관찰자의 시간에 비해 천천히 흐른다. 반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지구 중력의 영향을 관찰자보다 덜 받는 궤도를 도는 인공 위성내 시간은 관찰자보다 빠르게 흐른다. 정확히는 인공위성내 시간은 ‘특수 상대성 이론’ 효과 때문에 하루 7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느리게 가고 ‘일반 상대성 이론’ 효과 때문에 하루 45 마이크로초 빠르게 간다.
GPS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20나노초(10억분의 1초) 이상 오차가 나서는 안된다. 이를 방치하면 하루 6마일 이상 오차가 발생해 GPS는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GPS 위성의 시계는 38마이크로초(45-7) 늦게 가게 설계돼 있다. 우리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로 생각했던 ‘상대성 이론’이 이처럼 일상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자율 주행차와 드론 택시가 미래의 교통 수단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GPS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회사인 지리 자동차는 지난 달 독자 제작한 항법 위성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 위성은 자율 주행차 성능을 개선할 GPS 위성으로 쓰이게 되는데 이 회사 혼자 2025년까지 연 500개의 위성을 띄울 예정이다. 이들은 대부분 1,000km이하의 저궤도 위성으로 2만km 상공을 나는 미국 GPS 위성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정확도는 높다. 일본의 혼다 자동차도 2030년까지 자율 주행차를 위해 독자적인 GPS 인공 위성을 띄울 계획이다.
요즘 세계 1위의 억만장자가 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버진 애틀랜틱의 리처드 브랜슨 등이 모두 우주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그 분야가 우주만큼 광대한 블루 오션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발사된 인공위성이 1,200여개에 달하는데 이는 전년에 비해 180%가 늘어난 것이며 이 추세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이 분야에 뛰어든 한국은 지난 주 누리호를 발사했으나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아쉽기는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이 우주 강국의 하나로 우뚝 서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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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