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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된 이라크의 민주주의 재건

2021-10-18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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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이 함락된 지 불과 몇 주 만에 미군 점령지였던 이라크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졌다는 주목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라크는 지난 20년간 미국이 국가재건이라는 중차대한 실험을 했던 곳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2004년 이후 6번째로 이라크에서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이뤄진다. 비록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에 머물긴 했어도 이번 선거는 이라크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전진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라크의 한 고위관리는 이를 “정치적 지진”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침공 이후 18년간, 이라크는 끝 모를 혼란과 내전, 이슬람국가의 급부상 등 숱한 악재에 시달렸지만, 이라크의 민주주의 체제는 이들 모두를 꿋꿋이 견뎌냈다. 무엇보다 선거가 정기적으로 치러졌고, 정당들은 나름대로 정책대결을 벌였다. 복수의 언론매체가 등장했고, (서방의 표준으로 보면 완전히 자유롭고 독립적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사법부도 점차 제목소리를 내고 있다. 예를 들어 법관들로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는 꽤나 공정했고 효율적이었다.

앞서 말한 이라크 고위 관리는 이번 선거가 “민병대의 패배이자 국가(이라크)의 승리”라는 점에서 “정치적 지진”에 해당한다고 풀이했다. 지난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이라크 군부가 눈 녹듯 사라진 이후 현지의 정치거간꾼들과 정당들은 저마다 무장 민병대를 조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슬람 국가(IS)와의 전쟁에 앞장선 시아파 민병대가 세력을 키웠고, 국가에 버금가는 종파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들 중 일부 무장조직은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민병대를 거느린 정당들의 의석은 45석에서 20석 아래로 떨어졌다.


이라크 총선이 불러온 두 번째 지각변동은 수니파의 높아진 투표참여율이다. 이라크의 소수종파인 수니파는 이라크의 정치체제에 가장 불만이 많은 집단으로 투표에 냉소적이었다. 과거에 그들은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에 여러차례 가담했다. 그러나 수니파는 이번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몇몇 소수 정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아랍어 온라인 매체인 알-모니터는 수니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정당의 지도자들이 합심한다면 총 329석의 의회 좌석 중 50석이 수니파의 통합 세력권에 편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수니파는 지난 2003년 이후 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은 반미급진세력의 지도자로 한때 미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모크타다 알-사드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라크의 국가 체제 안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알-사드르의 정치적 지위가 급속히 높아지자 그가 거느린 민병대 가운데 일부를 해산하고, 국가의 시스템을 존중하라는 압력도 커졌다.

알-사드르는 이같은 요구에 응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사드르는 재래식 민초 조직을 결성하고, 현명한 소통방식을 구사하는 전략을 통해 승리를 일구었다. 그가 이끄는 정당은 새로운 선거법을 효과적으로 이용했고, 지지자들에게 언제 어디에서 투표할지를 알려주는 앱을 개발했다. 이처럼 효과적인 유권자 ‘배분’을 통해 특정지역구의 당선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과격한 혁명분자로 출발해 먼 길을 걸어온 사드르는 수완 좋은 당의 보스로 서서히 변모하고 있다.

이라크 총선에서 배워야할 세 번째 교훈은 이란의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친 이란 정당들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의 고위관리는 “모크타다 알-사드르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어느 쪽이건 외세의 개입을 원치 않는 확실한 민족주의자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필자는 그에게 이라크의 상대적 성공을 가능케 한 요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이번 선거가 상대적이고 잠정적인 성공임을 시인한 첫 번째 이라크 관리다.) 그는 두 가지 주요 요인을 제시했다. 첫째는 미국의 초기 정책이 실패로 끝난 후 이라크의 모든 그룹을 정치체제 안에서 통합시키려는 가열찬 노력이다. “데이비드 페트리어스 이라크주둔미군 사령관과 레이 오디어노 미육군참모총장이라는 기묘한 커플이 주도한 이라크군 병력증강 전략의 예상치 못한 성공이 상당수의 수니 민병대를 체제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집단들을 하나로 모으려는 정치적 포용 노력은 애초부터 탈레반의 정치 참여를 배제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정책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이라크 관리가 밝힌 두 번째 요인은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이다. 그는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이 이라크의 통합을 이루는데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는 늘 단일국가이자 단일 정치공동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이슬람국가와의 싸움은 이 같은 정체성을 한층 심화시켰고, IS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민족적 자긍심이 높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이라크의 민주주의가 아직은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심각한 부패는 국가와 정치체제의 정통성을 위협한다. 현재 이라크가 당면한 도전은 “선거 패자들이 그들의 패배를 인정하고 폭력이나 초헌법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고무적인 신호가 보인다고 말한다. “이라크인들은 정치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고, 선거 결과를 신뢰하며, 무엇보다 정당들이 부단한 절충을 거듭하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패자는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모든 정당은 부단한 협상을 통해 절충점을 찾아가야 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라크가 민주주의에 유용한 교훈을 미국에게 한 수 일러줄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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