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실시된 독일 연방의원 총선거에서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앙겔라 메르켈(67) 총리가 소속된 중도 우파 연합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초박빙 접전 끝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이에 독일에서 지난 2005년 이후 16년 만에 보수 연합에서 중도 좌파 정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인지 주목된다.
전후 독일은 1949년 서독의 첫 총선 이래 한 번도 단일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적이 없다. 복수정당이 손을 잡고 연방의회 의석의 과반수를 확보, 연정을 구상해왔다. 이에 따라 16년 만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뒤를 이을 총리 자리는 두 정당의 후보 중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하는 후보가 차지하게 된다. 아마도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결정될 것이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올해로 정계 은퇴하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주목해야 한다. 2005년 11월22일부터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16년간 일한 뒤 물러나는 메르켈은 헬무트 콜과 함께 역대 최장수 독일총리이다.
1954년 독일 함부르크 출신으로 라이프치히 대학교 물리학 학사, 베를린 독일과학원 양자화학 박사 출신이다. 16년간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 각 4명, 영국 총리 5명과 맞상대로 지냈고 G7 정상회의에 역대 가장 많은 15번 참석한 기록이 있다.
메르켈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강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15년 100만명 난민포용정책으로 독일 내부에선 ‘무티(Mutti, 엄마) 리더십’이 빛을 발한다고 했고 국제사회에서는 EU(유럽연합)의 단합을 이끌어 ‘유럽의 여제’라 불렸다. 무엇보다 독일의 경제를 건전하게 이끌어와 독일은 코로나19 사태 충격이 유럽에서 가장 적은 편이다.
독일 기업 바이오엔테크가 미국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 예방 백신에 성공한 것도 그 업적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한일간의 꼬인 역사가 있는 우리에게 가장 다가오는 것은 독일의 역사적 과오를 총리가 직접 공개사과 한 것이다.
2007년 9월 유엔총회에서, 2008년 3월 이스라엘 의회에서 ‘홀로코스트는 독일인의 가장 큰 수치’라며 이스라엘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독일 총리 처음으로 2013년 8월 다하우 나치 강제 수용소를 방문해 희생자 넋을 기리고. “대다수 독일인이 당시 대학살에 눈감았고 나치 희생자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고 양심고백을 했다.
독일의 항구적 책임을 말한 그녀는 동독 출신이다. 베를린 교외 출신의 루터교회 목사인 아버지, 어머니는 영어교사, 아버지가 동독으로 발령 나면서 갓난아기일 때 부모를 따라 동독 이주, 그곳에서 성장하고 경력을 쌓았다.
메르켈은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 교체에 성공했으며 재임기간동안 원칙을 중시하고 어떤 친인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는 등 비리가 없다. 일에 관한 한 냉정하고 단호하며 실용주의지만 현 남편인 요아힘 자우어와 그의 전부인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 엄마로서도 성실하고 소박했다. 집에서 직접 망치 들고 못을 박았으며 남편의 아침 식탁을 손수 차렸다. 도우미 없이 빨래를 하고 옷도 별로 없었다.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총리 정도면 비서는 물론 요리사, 재단사, 담당 미용사 등등이 줄줄이 있고 모든 사소한 것들은 남의 손에 맡기고 자신은 그저 대중 앞에 얼굴 내미는 일에만 급급했을 터인데.
세계 역사의 흐름 한 줄기를 끌고 나가면서도 허영과 허세 없이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일은 대단하다. 이것이 바로 메르켈의 그 어떤 업적보다 더 엄청난 일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지난 16년을 돌아보며 각종 이권과 특혜 시비에 머리 터져라 싸우는 한국의 정치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엄마 리더십’을 지닌 정치인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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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