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이 둘 있다면 그것은 유교와 도교일 것이다. 이 두 교가 공통으로 떠받드는 경전도 있다. 주역이 그것이다. 주역은 흔히 ‘점치는 책’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밝힌 철학서이며 수양서이다.
주역은 괘사와 효사,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설인 십익으로 이뤄져 있는데 누가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효는 막대기 모양의 형상으로 길게 하나로 된 것은 양효, 짧게 두개로 된 것은 음효라 불린다. 양효는 하늘, 음효는 땅을 상징하는데 주역은 이 두 효만을 가지고 천지만물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이 효 셋이 모인 것을 소성괘라 부르는데 여기에 태극기에도 등장하는 건곤이감과 손태진간이 포함된다. 양효와 음효 셋이 모여 이룰 수 있는 경우의 수가 8개뿐이므로 소성괘의 숫자는 8개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8인 이유가 여기 있다.
소성괘 2개가 모인 것을 대성괘라고 하는데 이 때 경우의 수는 8x8=64개다. 두 괘 중 위에 있는 것을 상괘 혹은 외괘, 아래 있는 것을 하괘 또는 내괘라 부른다. 결국 주역은 이 64괘에 대한 해설인 셈이다.
64괘는 건괘로 시작해 미제괘로 끝나는데 그 가운데는 좋은 괘도 있고 나쁜 괘도 있다. 이 64괘 중 가장 좋은 괘의 하나가 13번째인 ‘동인’괘다. 상괘가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 하괘가 불을 상징하는 이괘로 돼 있어 ‘천화동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뜻을 같이 하는 동지를 구하는 괘로 불은 하늘로 치솟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임을 시사한다.
이에 못지 않게 좋은 괘가 14번째인 ‘대유’괘다. 이 괘는 동인괘와는 반대로 상괘가 이괘, 하괘가 건괘로 돼 있다. 이 때문에 이 괘에는 ‘화천대유’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천화동인’이 이제 막 떠오르는 해라면 ‘화천대유’는 해가 하늘 한 가운데 뜬 형상이다. 주역은 이를 ‘큰 수레에 물건을 가득 실었다’로 묘사한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가득 찬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은 주역의 핵심 가르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를 강조하기라도 하듯 ‘대유’ 다음인 15번째 괘는 ‘겸’괘다. 상괘는 땅을 뜻하는 곤괘, 하괘는 산을 뜻하는 간괘로 이뤄져 있어 ‘지산겸’괘라고도 불린다. ‘속에 산을 품고 있으면서도 땅처럼 겸손하다’는 뜻이다.
겸괘의 괘사를 보면 시종일관 가득 찬 것을 경계하고 겸손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덜어 겸손한 것에 보태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바꿔 겸손한 곳에 흐르고,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라고 돼 있다. 또 “군자는 많은 것에서 덜어 적은 것에 보태며 사물을 저울질 해 평평하게 베푼다”고도 적혀 있다.
요즘 한국에서 주역의 64괘 중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경제지 법조기자를 오래 하다 부동산 투자회사를 차려 대박을 친 김만배란 사람 때문이다. 대학에서 동양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회사 이름을 ‘화천대유’로 하고 자회사를 ‘천화동인’으로 했다. 이 회사는 3억을 투자해 3,000억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는데 가히 워런 버핏도 울고 갈만한 솜씨다.
문제는 이런 수익이 정당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는가이다. 김씨는 언론사 재직 시절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에 우호적인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고 그 후 그가 급조한 투자 회사는 성남 대장동 개발 수의 계약을 따냈다. 이 회사에는 대법원에서 이재명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그의 정치 생명을 살려준 권순일 전 대법관을 비롯,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고급 외제차를 선물받아 타고다닌 박영수 전 특검,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 속한 법무법인 등이 자문과 고문 등 명목으로 일하며 수 억을 받아갔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 수석의 아들은 이 곳에서 몇년 일하고 50억이란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퇴직금 명목으로 받았다. 박영수 전 특검은 본인으로는 모자란듯 그의 딸도 거기서 일하고 퇴직금을 받는다고 하는데 액수 밝히기는 거부했다. 거기다 불법 로비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와 그의 변호사, 그를 기소한 지검장이 모두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요지경 속이다.
한국 금융 정보 분석원은 이미 지난 4월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하고 내사중이며 경찰은 곧 김만배를 소환해 수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사실만으로도 일개 부동산 투기꾼에 놀아나는 한국 법조계와 정치권의 한심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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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