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5일, 미국과 영국은 AUKUS로 알려진 “3국 방위 동반자협정”의 일환으로 호주와 핵 잠수함 기술공유협약에 서명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는 미국 외교정책의 지정학적 지렛목이 동쪽으로 이동했으며, 향후 수십 년간 아시아가 국제무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이 같은 발표가 나온 바로 다음날, 중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후속체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공식적으로 가입신청을 했지만 AUKUS 핵잠 개발 지원합의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TPP는 아시아지역에서 경제적 지배력을 키워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앞장서 추진했던 경제협력체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한지 3일 만에 TPP 탈퇴를 선언했다.) 단 하루의 시차를 두고 연이어 나온 두 건의 발표는 대 중국정책의 복잡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워싱턴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여파로 미국의 근시안적 사고, 변덕스런 외교정책과 지구력 결핍이 연일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AUKUS의 핵잠거래가 보여주듯 실상은 정반대다. 지금까지 장장 15년에 걸쳐 미국은 유럽과 중동에서 점진적으로 방향을 틀면서 무게 중심을 아시아 쪽으로 옮겨갔다.
냉전시대에 유럽은 치열한 지정학적 경쟁의 중심이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이후, 미국은 서서히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소련의 해체와 함께 전시체제에서 평시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극동지역에 10만 명의 미군병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뒤이어 9/11 테러가 발생하자 워싱턴은 어쩔 수 없이 중동지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아시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중국 견제에 도움을 줄 우방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 년 간 이어져 내려온 정책을 깨고 인도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정상화’했다.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미국 외교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2만5,000명의 미군을 호주에 주둔시킬 것이라는 발표와 함께 “미국은 태평양 세력이며, 이 지역에 계속 머무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전략은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그의 스타일대로 시진핑 주석에 대한 개인적 찬양과 엄청난 대미 무역흑자에 대한 공격,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 진앙지라는 비난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지역에서 미군병력을 추가로 철수하고 태평양지역으로 관심을 돌리는 ‘방향전환 정책’을 충실히 따랐다. 트럼프는 미국, 호주, 일본과 인도 등 4개국 사이의 군사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대체로 느슨하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비공식 안보회의체인 ‘쿼드’를 강화했다.
아시아로의 방향전환에 결정적 가속력을 부여한 장본인은 중국이었다. 수십년 간 유지되어온 관행을 깬 베이징의 호전적 외교정책은 대다수 주변국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북쪽의 거대한 이웃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 인도는 미국의 베이징 견제 전략에 동승하기를 꺼려했고 오랫동안 쿼드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국경에서 발생한 양국의 유혈충돌 사태 이후 뉴델리의 입장에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났다. 인도는 쿼드를 받아들였고, 중국은 히말라야산맥의 얼어붙은 불모지 일부를 얻는데 그쳤다. 지금 인도는 쿼드 구성원간의 합동군사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다양한 측면에서 중국의 인도경제 개입을 금지했다.
중국과 호주의 관계도 이와 유사한 궤적을 그렸다. 지난해 중국이 호주정부에 제기한 14개 항목의 불만사항은 캔베라로 하여금 보다 강력한 베이징 억제수단을 찾도록 만드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고, 결국 호주 정부는 미국 측에 핵잠수함 거래를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이쯤에서 중국의 CPTPP 가입신청으로 돌아가자. 중국은 경제력, 기술력과 문화적 수단을 총동원해 베이징의 영향력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전의 전략적 접근법으로 돌아선 것일까?
시진핑은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늑대 전사’ 외교의 참담한 실패를 목격한 후 조용히 노선변경을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중국은 실제로 CPTPP에 가입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 않다. 중국이 핵심 분야에서 CPTPP 가입요건과 상충되는 ‘비시장 경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어떤 식으로건 CPTPP 가입을 성사시킨다면 이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베이징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한 무역 및 투자협정이 중국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잠수함 거래는 중요하고 현명한 전략적 포석이다. 이 같은 거래는 군사적, 정치적 측면에서 미국에게 이득이 된다. 그러나 중국의 도전이 근본적으로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것이라면? 미국의 CPTPP 재가입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앞으로 19년 후에나 실전배치가 가능한 8척의 호주 핵잠수함 건조 지원보다 전략적으로 훨씬 중요하다.
필자만의 견해가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한 애쉬 카터는 지난 2015년 “아시아에 또 한 척의 핵 항공모함을 추가로 배치하는 것보다 TPP에 가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 백악관의 최고위 아시아정책 입안자로 활동 중인 커트 캠벨도 그 당시 애쉬 카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우리가 아시아에서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한다 해도 TPP가입을 하지 않는다면 합격점을 받을 수 없다.” “설사 우리가 아시아에서 모든 일을 잘못처리해도 TPP에 가입하면 B 학점은 받을 수 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어떻게 될까?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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