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의 한 가운데/ 나는 어두운 숲속에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바른 길은 사라지고 없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는 단테의 ‘신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단테가 ‘신곡’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가 43살 때인 1308년이었다. 이 때 그는 고향 피렌체에서 쫓겨나 동가숙 서가식하며 “남의 빵이 얼마나 쓰고 짠가”(신곡, 천국 17장)를 절실히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단테의 처지가 항상 이렇게 비참했던 것은 아니다. 피렌체 명문가 출신인 그는30대 약관에 최고 행정 책임자인 집정관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프파와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파로 나뉘어 극심한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었고 구엘프파는 또 교황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흑 구엘프와 도시 국가의 독립을 지키자는 백 구엘프로 갈라져 있었다. 피렌체는 구엘프파가 기벨린을 몰아내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후 흑파가 백파를 쫓아내고 권력을 독점한다. 이 와중에 백파였던 단테는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몇번의 복권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문학을 통해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희망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 열매가 바로 ‘신곡’이다. 신곡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두운 숲속에서 방황하던 단테가 겨우 이를 빠져 나오려는데 사자와 표범, 암늑대가 나타난다. 이 세 동물은 인간을 죄에 빠뜨리는 폭력과 탐욕, 질투를 상징한다. 이들에 밀려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평소 단테가 가장 존경하던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영혼이 나타나 구원을 얻고 싶으면 자신을 따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신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인간들이 영생을 누리고 있는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죄를 지은 인간이 영원히 고통 속에서 벌받는 지옥과 죄를 지었지만 회개한 인간이 고통 속에 죄를 씻으며 천국에 갈 날을 기다리는 연옥을 먼저 보아야 한다며 그를 지옥으로 인도한다.
단테의 지옥은 전지옥이 시작인데 여기에는 악마의 편에도 신의 편에도 서지 않은 중립적인 사람들이 벌과 파리에 쏘이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다음에는 예수 이전에 태어나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유덕한 삶을 산 그리스의 시인과 철학자들이 살고 있는 림보가 나오는데 베르길리우스도 여기 출신으로 단테의 첫사랑 베아트리체의 요청으로 단테를 도와주러 온 것이다.
림보 아래로 펼쳐지는 본격적인 지옥은 크게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탐욕 지옥, 폭력 지옥, 사기 지옥이 그것이다. 단테는 사기를 불륜이나 살인보다 더 큰 죄로 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인간 고유이자 최고의 능력인 이성을 악용한 죄이기 때문이다. 지옥 맨 밑바닥에는 창조주이자 구세주인 예수를 배신한 유다 등을 사탄이 씹어 먹고 있다.
지옥 여행이 끝난 후에는 연옥 여행이 시작된다. 연옥도 지옥과 마찬가지로 전연옥이 있는데 여기에는 평생 죄를 짓다 죽기 바로 직전 회개를 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회개하지 않은 기간의 30배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 그 위에는 본 연옥이 펼쳐진다. 연옥은 죄의 종류에 따라 7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장 중죄가 교만으로 맨 밑바닥, 그 위가 질투, 폭력, 게으름, 탐욕, 식탐, 욕정 순으로 돼 있다. 이 단계를 다 거치면 꼭대기에는 ‘지상 낙원’이 있고 여기서 죄를 씻은 참회자는 천국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가 인도할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천국은 그가 상징하는 이성만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부터는 신의 은총을 상징하는 베아트리체가 안내를 맡는다. 단테는 9개의 천국을 지나며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를 찬미하는 성 버나드에 이끌려 신의 보좌가 있는 엠피리언에서 모든 빛의 근원과 삼위일체의 진실을 목격한다.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라는 구절과 함께 ‘신곡’은 끝난다.
‘신곡’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는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다 13세기 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 사람만이 지옥에서 천국까지 길고도 험한 여정을 웅혼하고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단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올 9월은 단테가 숨을 거둔지 700년이 되는 해다. 한 때 그를 추방한 피렌체는 그의 시신이 묻혀 있는 라벤나에 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라벤나가 거절, 피렌체에는 “가장 높은 시인에 경의를 표하라”(지옥 4장)는 글이 적힌 빈 무덤만이 남아 있다.
20세기 최대 시인으로 손꼽히는 T S 엘리옷은 “단테와 셰익스피어는 세계를 양분한다. 세번째는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700주기를 맞아 ‘시인의 정점’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로 불리는 단테의 대작을 읽어보는 것이야말로 경의를 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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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