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나 에스테이트’, 나파 밸리의 경이

2021-09-01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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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에스테이트’(Dana Estate)는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자주 회자되는 와이너리다. 나파 밸리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와이너리, 와인비평가 로버트 파커(RP)의 100점 만점을 두 번이나 받은 이력, 이희상 전 동아원 회장과 그의 사위 전재만(전두환 전 대통령의 삼남) 대표가 경영하는 와이너리… 라는 점에서 꽤 오랫동안 호기심과 화제의 중심이었다.

설립 초기에 투입된 엄청난 자금 때문에 한때는 비자금 운운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한국검찰 수사에서 모든 의혹이 해소되었고, 지금은 나파 밸리 유일의 한국인 소유 ‘특급’ 와이너리의 자부심을 드러내며 조용히 저변확대에 나서고 있다. 일반에 개방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많은 한인들이 와이너리를 다녀갔고, 상당수가 다나 와인을 즐기거나 멤버가 되었으며, LA 한인타운의 몇몇 식당과 마켓에서도 취급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말로만 듣던 ‘다나 에스테이트’를 지난달 방문해 포도밭을 둘러보고 테이스팅 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처음엔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다. “엄청난 투자로 나파 밸리의 최상급 땅에서 최고 수준의 와인메이커를 고용했으니 좋은 와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희상 회장의 ‘간증’을 들어본 후에는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나파 밸리 와인업계는 완전 백인들의 세상이다. 배타성 강하고 긴밀하게 조직된 사회이며, 와이너리 한다고 아무나 끼어주지 않는 하이소사이어티 이너서클이다. 일본계와 중국계도 뚫고 들어가지 못한 그들만의 리그, 이 회장이 거기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많이 무시당하고 고생했는지, 숱하게 문전박대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무용담’은 삼박사일이 모자란 듯했다.

이 회장이 자주 드는 예화가 있다. “베트남사람이 한국에 와서 김치를 담가 팔겠다고 하면 누가 사먹겠냐?”는 것이다. 얼굴 노란 동양인이 불쑥 나타나 서양 술 와인을 만든다면? 토박이들보다 100배는 잘 해도 인정받을까 말까하다는 얘기다.

그런 ‘다나’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지 불과 3년 만에 ‘와인 노벨상’으로 불리는 RP 100점의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고, 3년 후 또다시 100점을 받으면서 단번에 컬트와인으로 등극했다. RP에게만 두번 받았다는 것이지 제임스 서클링, 안토니오 갈로니 등 RP 버금가는 영향력 있는 평론가들에게 받은 100점을 모두 합치면 6차례나 된다. 신생 와이너리로서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고, 당연히 얕보던 주변의 시선도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다나의 위상은 ‘할란’이나 ‘스크리밍 이글’ 같은 최상급 컬트와인을 이야기할 때 함께 언급되는 수준이다.

‘다나’는 이회상 회장의 호 ‘단하’에서 따온 이름이다. 멋있고 맛있는 삶을 추구해온 그는 동아원 제분사업과 별도로 1997년 와인수입업체 ‘나라셀라’를 설립, 한국에 나파 밸리 와인을 처음으로 수입한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쌓은 인맥과 열정,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2004년 와이너리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한국과 미국을 오가야하는 경영 난관이 부딪쳐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사위 전재만 대표에게 SOS를 쳤다. MIT에서 MBA 공부 막 끝내고 박사과정에 들어가려던 그는 “딱 2년만 도와달라”는 장인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2007년 ‘임시로’ 합류한 것이 지금의 와이너리 전문경영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지금껏 방문한 수많은 와이너리 중에서도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언론에 숱하게 보도된 유명건축가 하워드 베켄의 건축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국의 혼과 감성이 기품있게 배어든 인테리어, 그 절제된 미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곳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각 포도밭의 특성에 맞게 지은 3개의 발효실이었다. ‘다나’는 4곳의 특급 포도밭-로터스(Lotus), 허쉬(Hershey), 헬름스(Helms), 크리스탈 스프링스(Crystal Springs)를 소유하고 있는데 각각 토양, 해발, 경사도, 햇빛 받는 방향이 달라서 맛과 특성이 뚜렷하게 다른 포도가 나온다. 이 각각의 테루아를 순수하게 표현하기 위해 거기에 맞는 대형 오크뱃, 콘크리트 뱃, 소형 오크배럴의 다른 발효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오크숙성 셀라도 놀라웠다. 와인의 이동(래킹)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크통을 위로 쌓지 않고 바닥에 1단으로 깔았는데, 금싸라기 땅 나파에서 공간을 ‘낭비’하는 이런 럭서리는 ‘오퍼스 원’ 외에서는 본 적이 없다.


“와인을 신생아처럼 다루라”고 당부하는 이 회장의 완벽주의는 먼지하나 없이 정갈하고 청결하게 관리된 발효조와 저장실, 종일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와이너리 곳곳에서 느껴졌다.

‘다나’는 초기에 1,000케이스 정도 소량 생산해 구입조차 어려웠지만 곧이어 세컨 레이블 ‘온다’(Onda)와 ‘바소’(Vaso)를 출시하면서 6,000케이스까지 늘어났고, 앞으로 조금 더 늘릴 계획도 갖고 있다. 모두 카버네 소비뇽이지만 얼마 전부터는 숙성 가능한 소비뇽 블랑도 만들기 시작했다. 와인 가격은 ‘다나’ 싱글 빈야드 와인이 병당 600달러, ‘온다’ 250달러, ‘바소’ 리저브 150달러, ‘바소’는 75달러 선이며 리테일보다는 회원제로 판매된다.

완벽주의의 다른 말은 장인정신이다. 와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한국인의 장인정신으로 나파 밸리를 넘어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하겠다는 이희상 회장의 꿈은 오늘도 포도열매와 함께 탄탄하게 영글어가고 있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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