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쓴 소설이다. 몇 년 전 읽었던 이 책을 지난 주말 다시 한 번 읽었다. 처음에 받았던 생생한 충격이 이번에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생소한 나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어떤지 다시 한 번 분노하고 비통했기 때문이다.
저자 호세이니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의사가 되었으나 틈틈이 작품을 써서 2003년 첫 장편 ‘연을 쫓는 아이’로 데뷔했고, 4년 후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발표했다. 두 소설 모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각각 101주와 49주 동안 올랐을 정도로 큰 감동과 반향을 선사했고, 세계 70여개국어로 번역됐다.
‘연을 쫓는 아이’가 카불에서 성장한 두 소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천개의 태양’은 전쟁과 폭력 속에 생존해야하는 두 여성의 우정을 그린 책이다. 숱한 내전과 소련침공, 탈레반 학정, 미국과 탈레반의 전쟁 등 아프간의 비극적 현대사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펼쳐진다.
부잣집의 사생아로 태어나 숨겨진 채 자라난 마리암은 열다섯에 중년의 홀아비에게 강제결혼 당하고, 계속되는 유산과 남편의 거친 폭력을 견디며 공포의 나날을 보낸다. 반면 아름답고 명석한 라일라는 진보적인 아버지 덕에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가진 여성. 배경과 나이가 크게 다른 두 여인이 내전의 비극으로 뜻하지 않게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끊임없는 생명의 위협 속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희생으로 희망을 키워나간다.
지난 주 내내 이 책의 두 주인공을 떠올리며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아프간 여성들 때문이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1996~2001)에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앞세워 여성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여성의 교육과 취업, 사회활동이 일체 금지됐고, 남자보호자 없이는 집 밖을 나서지 못했으며, 공공장소에서는 부르카를 착용해야했다.
부르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마저 망사로 가리는 복장이다. 니캅(눈을 제외한 전신 가림), 차도르(얼굴을 제외한 전신 가림), 히잡(머리카락과 목을 가림)과 비교하면 가장 엄격한 복장이다. ‘천개의 태양’에서 처음 부르카를 입었을 때를 마리암은 이렇게 묘사한다. “망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게 낯설었다. 주변을 볼 수 없게 되니 힘이 빠졌다. 주름진 천이 입을 질식시킬 것처럼 압박하는 게 싫었다. 부르카는 한쪽에서만 볼 수 있게 된 창문 같았다.”
지금 아프간의 여러 도시에서 부르카 상점이 뜻밖의 호황이라고 한다.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부르카가 생존을 위한 ‘머스트해브 아이템’이 됐고, 가격도 10배 이상 급등했다는 것이다. 지난주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정도니, 현지의 공포가 어떨지 상상할 수 있겠다.
탈레반이 쫓겨나고 미국이 점령했던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의 여성인권은 크게 개선됐다. BBC 방송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 대학생의 3분의 1이 여성이고, 성인여성 5분의 1은 직장을 갖고 있다. 정치, 언론, 교육, 경제, 예술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의 숫자도 늘었다.
하지만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아프간 사회는 2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새 탈레반 정부가 여성의 교육권과 노동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의 제목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17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의 시 ‘카불’에서 따온 것이다.
“장미와 튤립으로 가득하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시, 천사조차 그 푸른 초원을 부러운 눈으로 내려다본 도시, 지붕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달들이 반짝이고, 벽 뒤에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숨어있는 도시…”
저자는 이 제목을 통해 카불이 과거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는지를 알리고 있다. 또 소설 속 대화를 통해 마리암의 고향 헤라트가 한 때는 페르시아 문화의 요람이었고 시인과 화가들의 고향이었으며 “헤라트에서 다리를 뻗으면 차이는 것이 시인들의 엉덩이일 정도였다”고 묘사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의 수준 높았던 문화를 자랑한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최근 CNN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면서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아프간은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짧은 치마를 입고 차를 몰며 변호사와 의사, 공무원으로 일하던 자유로운 곳이었다”며 “용감하고 지략과 회복력이 뛰어난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은 아프간 주민들에게 빚을 졌다. 미국을 믿고 미국의 목표에 발맞추어 목숨을 걸고 일했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려선 안 된다”는 호세이니의 눈물겨운 호소가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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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