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식민지 조선의 저항시인 이상화는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머리를 “지금은 남의 땅”이란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라고 한다. 뒤에 가서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라고 읊조린다. 그는 “푸른 웃음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고 자조한다. 그리고는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는 말로 시를 끝맺는다.
1945년 8월15일 우리 민족의 빼앗긴 들에 광복의 큰 기쁨이 찾아왔다. 이제 모국이 10대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오늘날에도 그의 시가 변함없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당시와 달라진 무엇을 느끼기 어려운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있고 그것을 누구나 은연중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팬데믹 와중에도 LA 교외의 샌타 클라리타 집을 나서 북쪽으로 다섯 시간을 운전하여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샌타 클라라를 가보았다. 실리콘 밸리 지역에는 스탠포드 대학이 있었고 구글과 애플 등 IT 산업이 운집해 있었는데 그곳 토박이 한인 언론인의 말에 따르면 그 지역경제가 미국 총생산의 70%를 담당하여 미국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했다.
“뉴욕은요?” 하고 물으니 “그곳은 소비 도시로 30% 정도로 보면 되며 앞으로는 그 비율이 더할 것”이라고 했다. 그곳이 미국의 중심인 듯 말하는 그의 지역애착이 대단했다.
캘리포니아의 겨울 스키로 손꼽히는 인근의 매머스 산의 호수지역에 가보니 높은 고원에 큰 호수 다섯 개가 가까이 있고 작은 호수는 백 개가 넘는다는데 저마다 한여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넋을 잃고 한동안 산을 배경으로 한 호수의 절경에 빠져들었다. 자연이 주는 해방감과 함께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이 온몸을 감쌌다.
순간 언뜻 서울에서 스스로 운전해서 누구의 도움 없이 지도 한 장 달랑 가지고 내 고향 평안북도 영변을 찾아가볼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오려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김소월의 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관서팔경의 명승지로 꼽히는 아름다운 약산동대로 둘러싸인 그 고향 땅을 운전해서 가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하나의 꿈이다. 설령 가더라도 이젠 핵시설이 있어 접근이나 할 수 있으려나.
새로운 땅 뉴프런티어를 외치던 존 케네디 대통령이 애송하던 계관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선택의 두 갈래 갈림길에서는 어느 길을 선택해도 먼 훗날 생각해보면 다소 후회가 남고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는 계속한다.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둘로 갈라진 땅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지역의 땅을 빼앗긴 들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심중에 봄이 아니라 생각하고 언제나 봄이 오려나 하고 목을 빼고 있을 터이다.
주변이 스산하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1926년은 거의 백년전이다.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자유로이 오갈 수 없는 들판이 모국 한반도의 현실이다. 답답워라, 웃어웁다. 봄은 오고 있는가? 지금은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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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