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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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2021-07-06 (화) 서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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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지를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뜨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서수찬 ‘이사’

앞산에 참나무가 푸른 건 다람쥐들의 건망증 때문이라죠? 지난 가을 묻어둔 도토리를 다 찾아먹지 못해 싹튼 거라죠? 건망증 때문이 아닌지도 몰라요. 이사 올 후손 위해 나뭇잎 장판 속에 묻어놓고 떠난 건지도 몰라요. 우주의 한 모퉁이 태양계의 달동네에 살고 있는 지구별 주민들은 후손을 위해 무엇을 묻어두고 있나요? 에너지 고갈과 기후변화와 멸종과 무서운 폐기물 말고 어떤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두고 있나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향이 난다고 웃는 시인의 아내여, 슬픔도 향이 나는 그 마음이야말로 장판 밑에 두고 가셔요. 반칠환 [시인]

<서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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