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출간된 ‘중독’(Hooked)은 미국 식품업계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 책이다. 저자 마이클 모스(Michael Moss)는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에서 일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탐사보도기자로, 2013년 펴낸 ‘배신의 식탁’(‘Salt, Sugar, Fat’)이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열풍을 일으킨 바 있다.
‘배신의 식탁’에서 식품업계가 설탕지방 소금의 과다한 조합으로 우리의 입맛을 길들여왔으며, 이 때문에 미국인들의 건강이 엉망이 되었다고 고발한 저자는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중독’에서는 “가공식품이 술, 담배,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낸다. 수많은 식품업계 내부자들과의 인터뷰와 기록, 산업문서 분석을 통해 파헤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가공식품은 우리 뇌에서 마약처럼 작용한다. 그 이유는 식품기업들이 소금 설탕 지방의 함량을 높여 지복점(bliss point)을 자극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음식의 공식을 찾아내고, 자연식품의 생물학적·화학적 특성이 사라진 고도가공식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복점은 뇌의 보상욕구를 자극하여 욕망이 충족된 상태, 소비자 만족도가 가장 높은 소비점이다. 지복점이 자극되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이 먹게 된다. 사람들이 가공하지 않은 자연식품은 절대 과식하지 않지만, 감자 칩이나 오레오 쿠키는 봉지가 빌 때까지 계속해서 먹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물질의 중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것이 얼마나 빨리 뇌에 도달하는가 하는 것이다. 크랙 코케인을 피우는 것이 코케인을 코로 흡입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흡연이 훨씬 빨리 약물을 뇌까지 전달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중독성 약물도 가공식품만큼 빠르게 우리 뇌의 보상회로를 작동시킬 수는 없다고 모스는 쓰고 있다. 담배연기가 뇌를 자극하는 데는 10초가 걸리지만 혀에 설탕을 살짝 묻히면 0.5초밖에 안 걸린다는 것이다.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섭취하면 도파민이라는 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단짠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았던 것을 기억하는 우리 몸은 포만감을 무시한 채 자꾸 그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미각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
치즈버거, 트윙키, 도넛,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냉동피자, 각종 과자와 빵… 그로서리 스토어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들은 점점 더 먹고 싶게 만들어졌다. 수퍼마켓에서 파는 식품의 3분의 2가 중독의 첫 방아쇠인 설탕을 함유하고 있고, 선반마다 방부 처리된 포장음식이 놓여있다. 끊임없는 광고와 마케팅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인스턴트식품의 유혹을 증폭시키고, 날이 갈수록 비만인구는 늘어난다.
질병통제센터(CDC)에 의하면 2018년 현재 미국인의 42%가 비만이다. 이는 2000년의 30%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에 고도비만 역시 4.7%에서 9.2%로 두배 증가했다. 그런데 가공식품의 문제는 살찌는 것만이 아니라 대사증후군, 심장질환, 뇌졸중, 당뇨병, 암, 우울증과 같은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질병에 소요되는 의료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1998년 785억 달러이던 것이 2008년에는 1,470억 달러로 치솟았다.
“1969년 미국 식품업계는 9,000만 파운드 이상의 조미료와 첨가물을 사용했다. 이 밖에 색깔과 감촉을 증진시키고 식품의 질을 보존하기 위해 8억 파운드 분량의 첨가물이 이용되었다. 미국식품에는 몇가지 발효제와 9가지 유화제, 30가지 농축제, 85가지 계면활성제, 7가지 응고방지제, 28가지 산화방지제, 열댓가지 색소를 비롯해 30가지의 화학방부제, 1,100여가지의 조미료 재료를 포함해 2,500~3,000종류의 식품첨가물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고, 매년 신종 첨가물이 소개된다.”
백과사전편집자 제임스 트래거가 1970년에 쓴 ‘식품서’(Foodbook)에 나오는 내용이다. 50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어떠할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자연주의자 헬렌 니어링은 1990년에 쓴 ‘소박한 밥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즘 마켓에서 파는 음식은 대개 무가치한 방식으로 뒤섞거나, 원재료의 중요한 성질이 빠져나간 것들이다. 이렇게 부자연스런(저온살균하고, 훈제하고, 소금에 절이고, 설탕을 뿌리고, 색소를 입히고, 방부제를 섞은) 가짜음식에는 천연의 요소가 남아있지 않다. 음식의 종류는 자연 그대로의 싱싱한 날것, 고온 가열하여 생기가 빠져나간 조리음식, 제조되고 조리되어 죽고 독성이 든 음식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독성에 찌든 이 세상에서 안전한 식습관이란 바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피하는 것이다.”
“썩거나 부패하는 것만 먹으라. 그러나 썩기 전에 먹으라.” 건강과 식단에 많은 영향을 미친 존스홉킨스 대학의 E.V. 맥컬럼 교수의 말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단순하라. 단순하게 하라. 하루에 세끼를 먹지 말고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자. 수백가지 요리 대신 다섯가지만 먹자. 다른 것도 그렇게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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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