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인들이 역사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3년 전에 나온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국적취득을 위해 이민자들이 치르는 시민권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미국인은 세 명당 한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미국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민교육이 위축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시사점이다. 사실 미국인들은 과거사 논의에 늘 뜨거운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도 우리는 양쪽으로 갈려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올바른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 이런 노력이 국론분열을 조장할 뿐이라고 맞선다.
과거사와 관련한 최근의 논란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주 미국 올림픽 육상대표 선발전에서 3위에 입상한 여성 해머던지기 선수 그웬 베리는 시상식 도중 국가가 연주되자 항의의 표시로 성조기를 등진 채 관중석을 향해 돌아섰다. 이들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베리는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전체 가사 중 세 번째 단락에 노예들을 비하하는 무례한 언급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해명했다.
베리의 행동에 대한 구구한 반응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일파만파로 번진 논란 덕분에 필자는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Star-Spangled Banner)에 관해 그동안 몰랐던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곡은 1931년에 국가로 채택됐다.) 또한 그웬 베리의 지적대로 가사의 세 번째 단락에 탈출을 감행하려는 노예들에 대한 거친 언급이 담겨있고, 노랫말을 쓴 프랜시스 스콧 키는 실제로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
미국인들이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걸린 것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피와 땀으로 뭉쳐진 민족주의가 아닌 아이디어의 바탕 위에 세워진 나라다. 우리가 미국적 이상과 대치되는 ‘비미국적’인 것(something being ‘un-American’)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이탈리아적’ 혹은 ‘비-러시아적’인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파악하기 힘들다. 온갖 아이디어를 입에 올려도 러시아인은 여전히 러시아적이다. 러시아의 민족주의는 이념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대로 아이디어를 최우선시하는 나라이다.
과거사를 논할 때, 우리는 미국의 의미를 따진다. 일찍이 역사학자인 헨리 스틸 코메이저가 지적했듯 이탈리아와 독일이 미국보다 100년 이상 뒤늦게 민족국가의 대열에 합류하는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의 건국시기가 세계 근대사와 겹치지만 이들의 역사와 전통, 신화는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왔다.
코메이저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에게 국가는 역사의 산물”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역사는 국가의 창조물이다.” 미국인들에게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단순한 축적이 아니라 국가의 의미와 메시지를 강조하는 능동적 선택의 산물이다.
역사상 미국인들이 행복한 의견일치를 보인 황금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미국은 심각한 불협화음 속에 출발했다. 헌법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10개의 수정조항을 덧붙인 다음에야 비로소 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거의 2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미국인들은 국가 확장에서 경제, 전쟁, 특히 노예제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안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노예제와 그에 따른 결과는 미국사에 찍힌 최악의 오점이다. 당연히 노예제는 가장 크고 시끄러운 논란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필자는 논쟁을 벌이는 양쪽 진영 소속원들 모두 상대방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경악하거나 지나치게 멀리 나간 논점에 종종 몸서리를 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아이디어와 사고 및 열정의 표현은 삶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이런 논쟁이 전개되는 사회는 과거의 과오와 실패, 비행을 영웅적 역사로 말끔하게 포장한 사회에 비해 훨씬 활기차다.
이처럼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토마스 제퍼슨이나 우드로 윌슨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과 동시에 큰 과오를 범한 복잡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들의 공과와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힘겨운 씨름을 벌여야한다. 올바르게 행동한 사람을 칭찬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자유로운 사회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역을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는 지적풍토가 행여 잘못된 아이디어를 풀어놓는 게 아닌지 우려한다. 이들은 보다 나은 자신의 아이디어로 대항에 나선다. 좌파의 취소문화(cancel culture)는 우파의 우려를 불러오기에 충분한 철두철미하게 진보적인 추세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공화당이 장악한 여러 주의 주의회들이 앞 다투어 만들어내는 악법들이다. 이들은 한결 같이 특정한 아이디어와 이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한다. 취소문화의 우파버전은 빠르게 법적 검열과 선동으로 변하고 있다.
이번 주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요란스럽고 다채로운 축하행사가 이어지겠지만 대약진정책에서 문화혁명에 이르기까지 과거에 당이 저지른 참담한 역사적 과오에 대한 공개토론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힘과 자신감이 아닌 두려움과 취약성의 신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