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키드로우 노숙자들 좋은 이웃이죠”

2021-04-29 (목) 석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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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물려준 마켓 3년째 운영 대니얼 박씨

▶ ‘소수계 화합 모델’꿈

“스키드로우 노숙자들 좋은 이웃이죠”

대니 박(맨 오른쪽)씨가 지난 27일 자신의 마켓에서 흑인 고객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맨 왼쪽의 박씨의 어머니 메이 박씨는 단골 손님에게 김치를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스키드로우 노숙자들 좋은 이웃이죠”

대니 박씨의 LA 다운타운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 앞에서 지난해 추석 때 주민들이 모여 화합과 연대를 상징하는 차례를 함께 지낸 뒤 한 자리에 모였다. [대니 박씨 제공]



주민들과 ‘추석 차례’ 지내며 연대교류

“흑인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통해 다시는 슬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미주 한인 이민역사의 가장 큰 상처이자 비극으로 남아 있는 1992년 ‘LA 폭동’이 29일로 어느덧 29주년을 맞았다. 당시 폭동을 경험했던 한인 1세대들은 상처 후 트라우마로 인해 여전히 당시의 아픔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호소하곤 한다.

여전히 한·흑 갈등이 지워지지 않은 상흔처럼 한인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가운데 한인과 흑인 커뮤니티의 연대와 화합에 앞장서며 미국 최대의 노숙자 집결지인 LA 다운타운의 스키드로우에서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Skid Row People’s Market)’을 운영하며 나락에 빠진 흑인들을 돕고 상생을 실천하는 젊은 한인 남성이 있다. 바로 올해 36세의 대니 박(박재민)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패사디나 아트센터를 졸업한 후 포틀랜드 나이키사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26년간 스키드로우 지역에서 운영해 온 마켓(구 베스트마켓) 처분을 두고 고민하자,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 마켓을 인수받았다.

박씨는 “스키드로우는 제가 수십 년간 자랐던 고향과 같은 곳으로, 이웃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알고 있다”며 “부모님이 그러셨듯이 저 또한 스키드로우 지역 사람들에게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질 좋은 음식 제공 ▲지역 일자리 창출 ▲안전하고 협력하는 분위기 등을 경영 철학으로 세우고 지난 3년 동안 마켓을 운영해오고 있다.

스키드로우에서 마켓을 운영하는 박씨에게 흑인, 노숙자들을 상대로 일하는 게 무섭지 않은지 질문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박씨는 “전혀 무섭지 않다”며 “우리는 모두 다 똑같은 인간이고, 다 좋은 사람이다”고 답하곤 한다.

LA 다운타운의 샌피드로와 5가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 주변으로는 실제로 수많은 노숙자, 저소득층 흑인 및 라틴계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그가 상대하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노숙자들이다. 그의 부모님은 4.29 폭동이 일어난 지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0년대 중반에 스키드로우 지역에 마켓을 열었다.

박씨와 그의 부모님은 흑인 커뮤니티와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4,29 폭동을 한·흑 갈등의 프레임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박씨는 “백인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사회에서 소수인종은 꾸준한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소수인종끼리는 서로 다툴 게 아니라 함께 생존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박씨는 작년 한국 전통 명절인 추석에는 이웃 주민들을 초청해 함께 추석 차례를 지내며 “우린 모두 하나”라는 연대를 다지기도 했다고 한다.

박씨는 LA 폭동 전해인 1991년 사우스 LA의 한인 리커스토어에서 한인 업주 두순자씨의 총격으로 사망한 흑인 소녀 라타냐 할린스의 벽화가 사우스 LA 지역 건물에 그려지자 지난 2월 초 현장을 찾아 꽃다발을 두고 추모하기도 했다.

박씨는 앞으로도 “흑인과 한인 커뮤니티 간의 화합을 위해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사례로써 마켓을 이끌어 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석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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