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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와 언론의 명암

2021-03-02 (화)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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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의 획기적인 발달에 힘입어 이젠 개인도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손쉽게 뉴스를 만들어 전파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검증되지 않은 출처불명의 각종 뉴스가 한 사람씩 거칠 때마다 왜곡되거나 증폭되어 작년 한 해만 해도 미국과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각종 음모론, 북한 김정은 피격설, 미국 대선 부정 주장 등 셀 수 없이 많은 메가톤급의 가짜뉴스가 유포됐다.

이런 가짜뉴스의 홍수 가운데 최근 미국의 유력 언론사가 가짜뉴스 송사에 휘말려 눈길을 끈다. 바로 폭스뉴스가 그 주인공인데 전자개표기 제조회사인 스마트매틱(Smartmatic)으로부터 무려 27억 달러, 한국 돈으로 3조 원대의 천문학적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것이다.

작년 미국 대선 직후,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와 법률 고문 시드니 파월 변호사는 폭스뉴스를 비롯 뉴스맥스 등의 여러 대담 프로그램에 각각 출연해 전자개표기 회사들이 소프트웨어 조작을 통해 트럼프 지지표를 바이든 지지표로 바꿔치기 했다며 선거무효를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여러 주에서 진행된 선거위원회의 검표를 통해 곧 거짓임이 판명 났지만 한 철 선거로 주로 먹고사는 회사인 스마트매틱의 브랜드 가치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 다음이었다. 기업 신뢰도 상실로 큰 영업 손실을 입게 된 스마트매틱은 줄리아니와 파월뿐 아니라 그들에게 가짜뉴스의 ‘발언대’를 제공한 언론사와 뉴스 진행자들까지 명예훼손 혐의로 싸잡아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또 다른 피해업체인 도미니언 전자개표기 제작사(Dominion Voting Systems)도 줄리아니와 파월 변호사를 상대로 13억 달러의 소송을 1차 제기한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의 거짓 주장을 여과 없이 방출한 방송사들에까지 장차 전선을 확대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참이다.

미국 법 상 가짜뉴스는 고의로 허위사실을 만들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가해자뿐 아니라 이를 확인하지 않고 보도한 언론사에도 책임을 묻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명예를 훼손당한 피해자가 일반인인지 아니면 공인 자격인지에 따라 귀책사유가 달리 적용되는데 일반인이라면 허위사실의 말이나 글 등으로 입은 피해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그러나 공인이 피해를 입었다면 이에 더해 가짜뉴스 가해자가 악의를 가지고 그런 일을 했다는 이유를 추가로 입증할 수 있어야 책임추궁이 가능하다. 즉 일반인보다 쉽게 대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공인은 늘 이런저런 이유로 공격당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책임추궁 요건을 더 까다롭게 정해놓은 것이다.

따라서 소송을 당한 언론사의 방어 입장에서는 원고 측의 공격을 어렵게 하기 위해 공적인 선거업무를 다루는 전자개표기 제작사는 당연히 공인의 위치에 있다고 몰아가기 마련이다. 덧붙여 자신들은 전혀 편파보도의 악의가 없었음에도 이렇게 소송을 남발하여 언론사를 괴롭히는 것은 수정헌법 1조에 명시돼있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탄압이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이에 대해 스마트매틱과 도미니언 측은 폭스뉴스가 언론기관으로서의 단순한 발언대 제공 수준을 넘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대선 의혹을 증폭시켜 거짓 방송을 줄기차게 내보낸 것은 그 의도가 다분히 악의적이었음을 쟁점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가짜뉴스의 팬데믹 시대를 맞아 동전의 양면처럼, 여론 조성을 위해 발언대를 제공해야 할 의무와 더불어 거짓 정보의 확산을 저지해야 할 문지기의 의무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언론사의 역할에 대해 법원은 어떻게 정리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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