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슈끄지 보고서 내용은 “왕세자에만 응답하는 경호군도 작전”

2021-02-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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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쪽짜리 美 기밀보고서 공개…왕세자 비판하던 카슈끄지, 2018년 터키서 암살

▶ “왕세자 승인 없이 작전수행 가능성 매우 작아”… “평소 폭력 활용 지지”

카슈끄지 보고서 내용은 “왕세자에만 응답하는 경호군도 작전”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로이터=사진제공]

미국 정보당국이 26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에 사우디 국왕의 아들이지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기밀 보고서를 전격 공개했다.

왕세자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우디 정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카슈끄지는 사우디에서 저명한 가문 출신의 언론인으로, 처음에는 사우디 왕가와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 정책, 특히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비판적으로 변했다. 무함마드는 2017년 왕세자로 지명돼 실권자로 부상했지만, 사우디 내 비판론을 억압하는 탄압 활동을 관장했다는 것이 워싱턴포스트(WP)의 평가다.

카슈끄지는 2017년 미국으로 건너와 WP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무함마드 왕세자의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 억압에 도전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카슈끄지는 이로 인해 이혼, 사우디에 있는 자녀와의 결별 등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는 결국 약혼녀와 재혼해 터키 이스탄불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국적을 증명할 서류가 필요해 2018년 9월 말 이스탄불에 있던 사우디 영사관을 찾아갔는데, 며칠 후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다.

카슈끄지는 10월 2일 서류를 찾기 위해 영사관을 방문했다가 행방불명이 됐다. 나중에서야 사우디에서 온 암살단에 잔혹하게 살해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 이후 사우디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에 직면하자 사우디 법원은 카슈끄지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8명에게 징역 7∼20년형을 지난해 9월 확정했다.

유엔 조사단 등은 일찌감치 왕세자가 배후라는 강한 의심을 공개적으로 제기했지만 사우디 정부는 왕세자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미 국가정보국(DNI)이 공개한 기밀 보고서를 보면 미 정보당국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카슈끄지를 생포하거나 살해하기 위한 작전을 승인했다고 판단했다.

보고서는 그 근거로 2017년 이후 의사결정 과정에서 왕세자의 통제권, 핵심 측근과 개인 경호군의 가담, 해외 반체제 인사를 침묵시키기 위해 폭력적 수단 사용에 관한 왕세자의 지지를 꼽았다.

보고서는 "왕세자는 2017년 이후 안보와 정보 기구에 절대적 통제권을 행사했다"며 "사우디 관료들이 왕세자의 승인 없이 이런 성질의 작전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적었다.

구체적으로 왕세자는 당시 측근들이 할당된 임무 완수 실패 시 해고나 체포로 귀결될 것을 두려워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했는데, 이는 그의 동의 없이 민감한 조처를 할 가능성이 작았음을 시사한다고 적시했다.

또 당시 이스탄불에 도착한 15명의 팀 중에는 왕세자의 측근 보좌관이 이끄는 조직과 관련된 당국자들이 포함됐는데, 이 측근은 2018년 중반 왕세자의 승인 없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한 인물이었다.

이 팀에는 왕실경비대에서 왕세자를 경호하는 신속개입군 소속 요원 7명도 포함돼 있었다. 신속개입군은 왕세자에게만 응답하며, 실제로 왕세자의 지시로 사우디와 해외에서 반체제 인사 억압 작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우리는 신속개입군 요원들이 무함마드의 승인이 없었다면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왕세자가 카슈끄지를 사우디에 대한 위협으로 봤으며, 그를 침묵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광범위하게 지지했다고 적었다.

이어 "사우디 당국자들이 카슈끄지를 대상으로 한 불특정 작전을 사전에 계획했다"면서도 "얼마나 미리 그를 해치기로 결정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1명의 명단을 나열한 뒤 이들이 작전에 참여하고 지시를 받았거나, 왕세자를 대신해 카슈끄지의 죽음에 연루 내지 책임이 있다는 고도의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이 작전이 카슈끄지의 사망을 초래할지 미리 인식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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