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원이 중요한 이유

2021-01-12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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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조지아 주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정치 판도가 크게 바뀌게 됐다. 민주당이 백악관 탈환에 이어 상하 양원을 장악함으로써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제 오는 2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중간선거 때까지는 인사·예산·입법 등에서 공화당 반대에 부딪치지 않고 마음껏 정책을 펼 수 있게 됐다.

민주 공화 양당이 조지아 주 결선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는 상원 장악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입법부에서 법안은 주로 하원에서 만들지만 이를 거부하고 수정하고 통과시키는 것은 상원이다. 또 군대 파병, 고위관료 임명동의, 탄핵심판, 외국조약의 승인 등 범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신속을 요하는 권한은 모두 상원에게만 있다.

트럼프가 임기 동안 보수 대법관을 3명이나 임명했을 때 민주당이 전혀 손을 쓰지 못했던 것이나, 지난해 하원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트럼프를 탄핵소추 했지만 탄핵심판에서 부결된 것도 상원 다수당이 공화당이었기 때문이다.


상원과 하원은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처럼 그 위상과 권위는 크게 차이가 있다. 우선 수적으로도 희소하고(상원 100명, 하원 435명) 임기도 하원의원은 2년인데 비해 상원의원은 6년으로 3배나 길다. 영어로 상원을 세넷(Senate), 하원을 하우스(House of Representatives)라고 하지만 어퍼 하우스(Upper House)와 로어 하우스(Lower House)라고도 불리는 것처럼 상·하위 개념이 뚜렷하다.

상원의 명칭은 고대 로마의 원로원(senatus)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의 국부들이 나라를 건국할 때 영국과 다른 국가모델을 찾다가 로마공화정을 벤치마킹했다. 집정관(대통령), 원로원(상원), 민회(하원)로 구성됐던 로마의 정치구조를 그대로 가져왔고, 심지어 민회가 간접적으로 집정관을 선출했던 방식으로 대통령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상원의 위상은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대부분 상원의원 아니면 주지사 출신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버락 오바마는 초선 상원의원이었을 때 대통령이 됐고, 존 F. 케네디는 재선 임기 중에 당선되었다. 때문에 3선 이상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기도 했는데, 이를 깬 사람이 상원의원 7선 경력의 바이든이다.

카말라 해리스도 초선 상원의원 시절에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돼 부통령이 되었다. 최초의 여성, 아시안, 흑인이란 점에서 화제의 인물인 그녀는 이제 상원의장으로서 가부동수 표결 때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게 됐다는 점에서도 스팟라잇을 받고 있다.

그러면 해리스는 상원에서 표결이 있을 때마다 백악관이 아니라 의사당으로 출근해야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상원의 의사진행은 관례와 합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의장의 역할은 상징에 가깝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표결이 동수에 이르지 않도록 양당 간에 협상이 이뤄지므로 캐스팅 보트가 필요한 상황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원에 존속하는 필리버스터 제도로 인해 의결정족수가 51표가 아닌 60표인 경우도 있어서 결국 양당 지도부의 협의와 양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부통령 상원의장의 역할이 언제나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부동수가 나오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 의회 웹사이트에 의하면 1789년 연방의회가 출범한 이래 동률결정표(tie-breaking vote)가 나온 일은 268회 있었다. 가까운 예로 빌 클린턴 정부 초기에 세제개편안이 표결에 부쳐졌을 때 50대50이 나오자 앨 고어 부통령이 찬성표를 던져서 통과시켰다. 바이든은 8년의 부통령 시절 동안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3회나 사용했고, 딕 체니 8회, 앨 고어 4회, 아버지 부시도 7회 사용했다.


한 세기 전만해도 부통령은 거의 매일 상원의장 오피스에 출근했다고 한다. 부통령직 자체가 유명무실해서 백악관에서는 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대공황과 수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행정부가 방대해졌고 부통령의 업무와 권한도 그만큼 더 확대됐다. 그리고 이제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특별히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부통령’이란 점에서 해리스는 무척이나 민감하고 주목받는 존재다. 과거의 부통령들처럼 뒷전에 밀려나있는 인상을 준다면 소수계, 특히 이번 선거의 ‘블루웨이브’에 큰 힘을 보탠 흑인 유권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연방의회 232년 역사에서 상원의원으로 봉직한 사람은 거의 2,00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흑인은 10명, 히스패닉 10명, 아시아계 8명, 여성은 58명에 불과하다.(해리스는 흑인, 아시아계, 여성에 모두 계수됐다.) 한국계는 한명도 없었다. 연방 하원의원을 한꺼번에 4명이나 배출한 미주한인사회에서 이제는 연방 상원의원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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