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2020-12-0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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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18) 이순신 장군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충무공 이순신이 1587년(선조 20년) 함경도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으로 있을 때 기습 침입한 여진족을 쫓아 포로로 붙잡힌 농민과 병사를 구했던 사건을 기록한 그림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 고려에서 조선까지 함경도 지방에서 무공을 세운 인물 8명의 행적을 담은 북관유적도첩(北關遺蹟圖帖)의 한 장면이다. 건원보에서 이순신은 여진족 추장 울지내를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전남 완도군 고금도에 있는 월송대. 이순신 장군이 1598년 11월19일 새벽 노량앞바다에서 순국한 후 충남 아산으로 운구하기까지 83일 동안 안치했던 가묘 자리다. 이 가묘 자리에는 풀이 나지 않기로 유명하다. 얼마나 한이 많은 삶을 살다 가셨으면, 첫 83일 동안 쉬던 곳에서조차 풀이 나지 않을까.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1953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이충무공 영정은 류성룡의 징비록에 나와 있는 기록과 당시 14대 종손의 모습을 참고로 그린 것이다. 1973년에 이충무공의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아산 현충사 소장.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명량대첩을 기록한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 정유재란 때인 1597년 10월25일 명량대첩에서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이 기록돼 있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국보 제76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이순신 장군의 임진일기. 1592년 5월1일부터 4일, 5월29일부터 6월10일, 8월24일부터 28일까지 일기로, 1593년 2월1일부터 3월22일까지 내용도 실려 있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정조가 친히 글을 지어 내린 것임을 표시하는 어제(御製) 신도비 탁본 사진.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이 죽었을 때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그의 사적(事蹟) 즉 생애를 새겨 넣은 비석. 정조는 상충정무지비(尙忠旌武之碑), 즉 “충의를 드높이고 무용을 드러내는 비” 라고 이순신의 업적을 표현했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에 있는 충무사(국가사적 114호). 충무공 신위를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완도군 고금도 충무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 영정 앞에 방문객이 꽃을 갖다 놓았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는 ‘충무공’

생전에 변덕스럽고 괴팍하기로 유명했던 선조(1567-1608)로부터 궂은 고문과 고통을 당했던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을 많은 사람들은 잊지 않고 찾는다.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에 있는 월송대는 이순신 장군이 1598년 11월19일 새벽 노량 앞바다에서 순국한 후 충남 아산으로 운구하기까지 83일 동안 안치했던 가묘 자리다.

바닷물 소리가 들리는 언덕 위에 있는 월송대 가묘 자리에는 풀이 나지 않기로 유명하다. 얼마나 한이 많은 삶을 살다 가셨으면, 첫 83일 동안 쉬던 곳에서조차 풀이 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고금도(묘당도)에는 충무공 신위를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충무사(국가사적 114호) 가 있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라남도 해남은 조선 수군의 전라우도(全羅右道) 수군본부가 있었던 곳이고 정유재란(1597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일본 함대와 명량해협에서 교전하기 전에 진을 쳤던 곳이다.

해남에는 정유재란 때인 1597년 10월25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활약상을 기록한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가 있다.

일제시대 때 일본 경찰이 이를 서울로 옮겨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도록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파묻어 버렸다. 이 명량대첩비를 1945년에 찾아서 당시 미군정청의 도움으로 1947년 해남으로 다시 옮겨놓았다.

충남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에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일기 초고본 8권 중 7권인 난중일기(亂中日記, 국보 제76호)가 있는데,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훗날 역대 어느 임금보다도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정이 깊었던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 1752년 생, 재위기간 1776~1800)는 임금이 친히 글을 지어 내린 것임을 표시하는 어제(御製) 신도비(왕이나 고관이 죽었을 때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그의 사적(事蹟) 즉 생애를 새겨 넣은 비석)에서 상충정무지비(尙忠旌武之碑), 즉 “충의를 드높이고 무용을 드러내는 비”라고 써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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