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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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똥’

2020-12-03 (목)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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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게 내 밥을 주고
내가 새의 모이를 쪼아 먹는다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새에게 내 밥을 다 주고
내가 새의 모이를 평생 쪼아 먹는다
새가 내 밥을 맛있게 먹고
멀리 하늘을 날면서 똥을 눈다
새똥이 땅에 떨어진다
새는 하늘에다 똥을 누는 것이 아니라
결국 땅에다 똥을 누는 것이다

새똥이 있어야
인간의 길이 아름답다고
그 길을 걸어가야
내가 아름답다고

정호승 ‘새똥’

새똥에서 꽃이 핀다. 새똥에서 찔레 씨앗이 떨어진다. 새똥에서 산사나무 씨앗이 떨어진다. 새똥에서 아그배 씨앗이 떨어진다. 새똥에서 배풍등 씨앗이 떨어진다. 새똥은 새들이 배달하는 생명나무 택배다. 새들은 광합성을 하는 푸른 잎이 없고, 나무들은 하늘을 나는 날개가 없다. 나무들은 열매를 주고, 새들은 씨앗을 산 너머로 퍼트려 준다. 아침마다 쏴아~ 세라믹 우물에서 사라지는 사람의 똥도 본래 꽃을 피우던 것이다. 아이가 참외 먹고 싼 똥을, 바둑이가 두 벌 먹고 싼 똥에서 별처럼 노란 꽃을 피우던 개똥참외가 그립다. 반칠환 [시인]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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