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분탕질, 후대까지 영향

2020-11-16 (월) 12:00:00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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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선거 결과는 대다수 유권자들의 전망과 일치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조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가 제기한 여러 건의 소송도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판사는 트럼프 캠프가 제출한 소송개요를 실체 없는 ‘풍문의 결정판’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보태 각 주의 공화당 의원들은 대통령 선거인단 명부조차 작성하지 않고 있다. 이런 모든 정황은 현재 진행 중인 소음과 소송이 잦아들면서 내년 1월20일, 바이든이 거의 틀림없이 미합중국의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임을 일러준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방법으로 미국의 선거제도를 공격하고, 폄훼해가며 적법성을 깨뜨리려든다. 그가 제 아무리 용을 써도 권좌를 지킬 수야 없겠지만, 그로 말미암아 미국의 민주주의 문화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대통령의 충동질 탓에 그의 골수 지지자들은 법원의 결정과 재검표 결과에 상관없이 트럼프의 주장을 믿고 따를 것이고, 2020년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고 유지될 것이다.

이쯤에서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보자. 지난 2016년, 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던 투표일 당일 밤, 일반의 예상과 달리 패색이 짙어지자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진영의 분노와 지지자들의 격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게 전화해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힐러리는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국가의 미래를 위해 그가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공식 발표를 내놓았다.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그녀의 패배시인 연설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한 시간 반 동안 환담을 나누며 “원활한 정권인계를 위해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은 1차 대전 패전 이후 독일이 맞닥뜨린 어두운 형편과 완전한 역사적 평행을 이룬다. 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항복으로 끝나자 독일의 극우 집단들은 느닷없이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1918년 11월, 독일은 사실상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공산당원들과 유대인들이 합작해 독일을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몄고, 이들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독일의 극우세력이 꾸며낸 음모론의 골자다.

역사학자인 벤자민 카터 헤트는 그의 저서 ‘민주주의의 사망’에서 당시 ‘등 뒤에 칼 꽂기’식의 음모론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패전의 충격에 빠진 수백만 명의 독일인이 극우파의 음모론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패전의 트라우마를 달래기 위해 정서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극우세력의 음모론을 자주 입에 올렸다. 한 예로 그는 1922년에 행한 한 연설에서 “우리는 1918년 11월의 범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반역자들과 친구로서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은 전쟁터에서 스러진 200만 독일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행위다. 아니, 우리는 결코 그들을 사면해선 안 된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복수다!”

지금 뉴트 깅그리치는 이렇게 말한다. “조 바이든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이번 선거가 조지 소로스와 같은 재력가들의 자금지원을 받는 좌익의 권력 장악시도가 아니라는 점을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이미 지역사회 깊숙한 곳까지 퍼져 있다...나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깅그리치의 말을 뒷받침하듯 트럼프는 극우성향의 배우 존 보이트의 동영상을 리트윗했다. “우리는 지금 남북전쟁 이후 가장 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번 전투는 선과 악의 싸움이다. 그렇다. 악마와의 싸움이다. 사악하고 부패한 좌파는 이 나라를 갈가리 찢어놓으려 한다... 우리는 이번 싸움이 우리가 지구상에서 치르는 마지막 싸움인 것처럼 싸워야 한다.”

역사학자인 티모시 스나이더는 이 같은 수사의 위험을 확실하게 짚어준다. “만약 누군가 당신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면, 당신에겐 어떤 방식의 대응이건 모두 허용된다. 공정한 선거를 파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정한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지지자들에게 반대 진영에서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확신을 심어준다면, 그것은 그들을 향해 다음번에 당신 또한 부정을 저지를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번 룰의 잣대를 구부리면, 다음에는 아예 그것을 꺾어버릴 수밖에 없다.”

정치 시스템은 법과 룰의 단순한 집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적절한 규범과 행동의 축적이기도 한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켄터키 출신의 미치 매코널에 따르면 트럼프의 행동은 “100% 그의 권리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 재선도전에 실패한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통계상 패배가 확실해지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최종 개표 결과를 기다리지 않은 채 낙선연설을 했다. 민주적 규범과 행동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패배는 확고부동하다. 바이든은 2016년 트럼프가 차지한 것과 동일한 수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조지아에서 근소한 표차로 트럼프를 꺾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난 2000년 플로리다에서 기록된 조지 부시와 앨 고어의 득표율 차이에 비하면 25배나 높다. 바이든은 펜실베니아에서도 2016년 트럼프가 얻은 것보다 훨씬 많은 표를 끌어모았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평화로운 정권교체라는 말은 진부하긴 해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위해 이런 규범들을 마구잡이로 파쇄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그가 보이는 행동은 향후 수십년 동안 암세포처럼 끔찍한 전이를 거듭해가며 이 나라의 정치에 지대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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