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일’

2020-10-23 (금)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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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온 세계가 난리다. 긴 겨울을 대비하며 코로나 예방책 마련에 세계 각국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한 나라만은 자국민의 코로나 확진자가 10만명에 육박하는데도 1, 2차 세계대전 당시 팽배했던 군국주의 내지 민족주의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

바로 일본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는 퇴임 후 사흘만인 9월1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더니 한달 후인 10월19일 추계예대제에 맞춰 또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다. 아베 내각 계승을 공언해 온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지난 17일 참배 없이 공물을 봉납했다.

이에 대해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참배나 공물을 바치는 것은 개인의 신교 자유에 관한 문제로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행동이라는 한국과 중국의 유감 표명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을 전후한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사망한 군인, 간호사, 전쟁 노무자 등 246만6,000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특히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 14명의 위패도 포함되어 있다. 태평양전쟁을 발발케 한 도조 히데키 총리, ‘버마의 도살자’ 기무라 헤이타로, 전쟁외교를 수행한 도고 시게노리, 전쟁을 주도한 무토 아키라, 관동군 사령관 도이하나 겐지, 난징 대학살을 주도한 마츠이 이와네, 만주사변을 기획한 이타가키 세이지로 등이다.

이들 14명 중 8명은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났고 6명은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나중에 풀려났다. 이들이 신사에 합사된 사실은 주변국들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 전쟁 막바지에 가미카제 특공대는 ‘야스쿠니에서 다시 보자’는 마지막 인사말이 유행될 정도였다고 한다. 폭탄을 장착한 비행기를 몰고 미국 군함에 돌진한 자폭 공격이 1,000번에 이른다.

1869년 메이지 천황에 의해 만들어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가는 보수파 정치인들은 오직 영령을 높이 받들고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군국주의 망령을 불러내는 것임에도, 자신들이 애국자인양 한다.

일제는 패망한 다음날인 8월16일 남산에 있는 조선신궁의 신을 하늘로 보내는 의식을 연 뒤 해체 작업을 벌였고 남은 시설을 불태우는 일을 서둘렀다. 조선신궁의 주제신은 일본 건국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이다.

“총리를 사임했다는 것을 영령에게 보고했다.”는 아베의 말처럼 집권기 동안 집착해온 우경화 정책과 개헌이 귀신의 힘을 빌려 이룰 가능성이 있을까? 할복자살한 군인, 옥쇄 명령에 따른 부대원들, 자신의 삶을 다 살아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혼령은 못다 핀 젊음이 억울하지 않을까.

제2차 세계대전시 알프스 유격대 대위로 종군하고 파리 함락 후 지하저항 운동을 펼친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국제펜클럽 회장 앙드레 샹송(1900~1983)의 글을 인용해본다.


“나는 내일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2차 대전 중 스무 살의 일본 청년 학도병이 전장에서 마지막으로 자기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이다. 그에게는 희망의 내일이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온 절망의 내일만 있을 뿐.

오래 전부터 한일관계는 껄끄럽다. 스가 총리는 징용피해자 배상 문제로 압류재산을 현금화 하면 한일관계가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며 큰소리를 친다.

징병, 징용, 농토를 빼앗기고 도시의 빈민이 되었거나 만주로 연해주로 떠나야 했던 조선인, 독립운동 하다 길에서 죽고 고문이나 생체실험으로 사라져가고 전선에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조선인, 중국인 그리고 자신의 국민들에게 일본은 미안해해야 한다. 과거사에 대한 성찰, 반성 없이 ‘내일’은 없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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