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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불평등 심화… 우리 모두가 나서야

2020-10-19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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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불평등 심화… 우리 모두가 나서야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팬데믹은 차별을 모르는 공평주의자다.

세계적 대유행병은 부자와 빈자, 백인과 흑인, 도시와 농촌을 가리는 법이 없다.

미국의 대통령까지 전염이 됐으니 달리 덧붙일 말이 없다.


그러나 팬데믹은 실질적으로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미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에 수십 년래 최대 폭의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왔다.

미국 내부의 불평등에 관한 온갖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과 가난한 국가들 사이의 격차를 뜻하는 글로벌 차원의 경제적 불평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일부 개발도상 국가들의 눈부신 경제성장 덕분에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극빈자들의 비중은 1990년 수치의 1/4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이코노미스트지가 수집한 몇몇 통계치는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진전이 불과 몇 달 만에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 예로, 세계은행은 금년 한 해 동안 지구촌 인구 중 1억 명이 극빈층으로 재편입된 것으로 추산한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국가들을 통칭하는 서브-사하라 아프리카는 지난 25년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누렸지만 2020년에는 성장이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금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올해 기아에 직면한 사람들의 숫자가 이전에 비해 두 배가 늘어난 2억6,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게이츠 파운데이션도 아동 예방접종률이 20년 전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같은 통계치의 뒤편에는 모든 희망을 박탈당한 채 바싹 야위어가는 자녀들을 속절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기아에 허덕이고, 병마에 시달리는 개인들의 절박함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최고의 경제대국이라는 미국도 빈부격차가 심하다.

새로 나온 두 건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몇 달 사이에 600만-8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줄잡아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전기요금을 내지 못하거나 돈을 절약하기 위해 식사를 거르고 있다.

최근의 한 서베이에 따르면 ‘코비드-19 실직자’의 38%가 한 달을 버틸만한 금전적 여력을 갖고 있지 않다.

팬데믹이 어떻게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네 차례의 경기침체(recession)가 소득상위권 25%와 하위권 25%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노동부의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1990년, 2001년과 2008년의 리세션은 두 그룹 모두에게 불과 3% 정도의 거의 동일한 실직률을 안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비해 현재 진행중인 팬데믹 불경기로 인한 소득 상위권 25%의 일자리 손실은 초반에 약간 떨어졌다가 거의 완전하게 반등한 반면 아래쪽 25%의 일자리는 20% 이상 감소한 상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는 자명하다.

은행원, 컨설턴트, 변호사, 학자 등 원격근무가 가능한 근로자들의 생활은 일시적 ‘딸꾹질’을 거친 후 곧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반면 식당, 호텔 유람선, 놀이공원, 쇼핑몰 등지의 일자리는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지만 행동의 뒷받침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의회와 행정부는 대규모 경기부양패키지를 통과시키는 등 포괄적 재난구호를 위한 대담하고도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경기부양프로그램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로 말미암아 워싱턴 정가는 안일한 자만심의 덫에 치이고 말았다.

부양 프로그램의 시효가 거의 대부분 만료된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은 다시금 ‘당파 전쟁’을 벌이고 있다.

행정부가 당초 제시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구호패키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옳다.

팬데믹으로 인해 막대한 세수결손을 일으킨 전국 각지의 주 정부와 시 정부가 아무런 잘못 없이 벌을 받는 것 역시 민주당의 지적대로 온당치 않다.

그러나 민주당의 입장에선 일단 대국적인 견지에서 공화당으로부터 끌어낸 양보를 수용한 후, 미진한 부분은 선거가 끝난 다음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번 주 CNN의 간판 앵커인 울프 블리처는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1조8,000억 달러 상당의 구호패키지 제안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수세에 몰린 펠로시 의장은 블리처가 트럼프 행정부를 옹호한다는 불공정한 비난을 퍼부어가며 역공을 시도했다.

그는 공화당이 “우리가 지닌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협상을 통해 절충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두 개의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다.)
국가적 비상시국에 이런 태도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트럼프 행정부의 제안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이미 그들은 1조8,000억 달러에 달하는 패키지의 규모에 마땅치 않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민주당이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원에서 이를 통과시킨다면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원내대표와 그의 동료의원들에게 압박이 되지 않을까?
필자로선 엘리트들이 누리는 생활의 상대적 정상성(relative normalcy of life)이 서민들이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줌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은 그저 약간 어수선하고 이상할 따름일 수 있다.

그러나 수천만 명의 미국인, 그리고 수억 명에 달하는 지구촌 주민들에게 현 상황은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마땅하지 않을까?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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