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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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지키기

2020-10-09 (금)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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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은 한글날, 우리는 한국어로 말하고 한글로 카톡과 메시지를 보내고 저녁 여가에는 한국드라마나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들으며 피로를 푼다.

이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 불과 75년 전에는 당연하지도 않았고 일상적이지도 않았다. 일제하에서 일본어가 국어가 되었고 한국말을 하면 벌을 받거나 감옥에 갔다.
작년에 나온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를 보면 1940년대 독립운동 속의 우리말 지키기가 여실히 나타나있다.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자 극중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비밀작전 이름이기도 하다.

한글학자 주시경은 ‘말과 글을 잃어버리면 민족도 멸망한다’고 했으며 그와 제자들이 모인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말 최초의 사전 말모이 원고를 집필한다. 학회의 심부름꾼으로 취직한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가 글자를 배우면서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데 이처럼 말모이에 적극 협조하고 지켜낸 사람은 평범한 백성이었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조선식민 통치사’에 “조선인을 뿌리 없는 민족으로 교육하여 그들이 민족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자. 이것이 식민지 국민을 식민지 국민답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썼다.

그래서 일본은 합병 조약 후 한국어 역사책은 전부 압수하여 불태워버렸고 황국 신민화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일본식 성씨를 정하여 쓰도록 강요했다. 이 창씨개명은 1940년 2월11일부터 1945년 8.15 전까지 시행됐다.

1443년 세종대왕은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게 하고자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원리를 지닌 우리 문자를 창제했다. 한국어는 훈민정음, 정음, 언문, 국문으로 불리다가 불과 100여년 전 한글로 불리게 되었다.

한글은 14개의 자음과 10개의 모음이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기 쉽고 24개 문자로 소리의 표현을 1만1,000개 이상 낼 수 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다. 전 세계에 한류와 더불어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더불어 카톡이나 메시지 등을 통해 많은 신조어가 탄생하고 있다. 빠른 전달과 유연성을 지닌 재미있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세대 간 이해 격차가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다.

신조어 핵노잼(너무 재미없다), 핵꿀잼(너무 재미가 있다), 버정(버스 정류장), 마상(마음의 상처) 세젤여(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비담(비주얼 담당), 안물안궁(안 궁금함), 유무차별(유명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별), 낄낄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땐 빠져라),ㅇㄱㄹㅇ(이거 레알), 옥희(오케이_), 등등 일부러 그 뜻을 묻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이미 심쿵(심장이 쿵하고 놀랄 때)이나 츤데레(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 같은 경우는 방송이나 신문기사에 일반화되어 있고 즐감이란 말은 본인도 카톡사용시 간단하게 쓰고 있다.


또 한국의 고층아파트 이름에 영어가 대다수이고 드라마 제목에도 굳이 영어로 제목을 달기도 하고 심지어는 한국화 작품에 영어 제목을 달기도 한다. 영어와 한글을 함께 다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신조어를 만들고 싶다면 유행이 지나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게 살짝만 비틀자.

훈민정음 서문에 ‘한글창제의 4가지 정신’(자주 정신, 애민 정신, 창조 정신, 실용 정신)이 나온다. 올바르게 표기하고 올바른 한국어를 사용하며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한다.

코로나19가 별안간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덮은 것처럼 불과 110년 전에 나라를 빼앗겨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했던, 일상이 바뀌었던 과거가 있다. 우리 민족의 자랑이자 긍지가 된 소중한 한글을 지키고 찾아준 이에게 대한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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