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대통령후보 토론에서 누가 이겼는지 알고 싶다면 필자가 “스탈의 소음”으로 명명한 우리 정치사의 한 순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4년 선거 당시, CBS 기자였던 레슬리 스탈은 로널드 레이건의 언행불일치에 초점을 맞춰 그의 국내정책을 통렬히 비난하는 영상뉴스를 만들었다. 거기에는 패럴림픽(Paralympic) 출전 선수들을 격려하는 레이건 대통령 사진 및 새로 문을 연 양로원 영상과 함께 그의 행정부가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장애인들과 정부보조 주택에 대한 예산 삭감을 줄기차게 시도했다는 비판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스탈이 작성한 영상물은 저녁뉴스를 통해 거의 6분간 방영됐다. 방송이 나간 뒤 스탈은 그녀의 백악관 취재원들이 노발대발 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백악관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온 리처드 다먼 백악관 보좌관은 “멋진 보도다. 정말 좋았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깜짝 놀란 스탈이 이유를 묻자 다먼은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강력하고 감정적인 사진과 영상은 소리를 삼켜버린다. 장담하건데 시청자들 가운데 오늘 당신의 보도 내용을 귀담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화요일의 대통령후보 토론을 지켜보며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는 토론의 주도권을 쥐었고, 수시로 강력한 잽을 날렸으며, 아젠다를 통제해가며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반면 바이든은 트럼프의 끼어들기로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탈의 소음”에 생각이 미친 필자는 TV 볼륨을 끄고 토론의 일부를 다시 보았다. 소리를 제거하자 두 후보이 이미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화면의 한 편에 보이는 노신사는 다소 수척하고 가끔 흔들리는 듯 보였지만 환한 미소에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 다른 한편에는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고함을 질러대는, 비열한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악동이 보였다. 그는 토론이 진행된 90분 내내 얼굴을 찌푸리거나 빈정대는 웃음기를 내비쳤다.
필자는 늘 “스탈의 소음”을 텔레비전의 맹점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토론을 통해 필자는 새삼스레 TV의 위력을 깨달았다. TV는 그 모든 소음을 가르며 유권자들에게 대통령후보 두 명의 성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을 열어주었다. TV는 바이든의 커다란 장점과 트럼프의 거대한 약점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여기서 정책은 잠시 내려놓자. 트럼프는 늘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람들과 기관과 규범을 악용하는 나쁜 성격의 소유자이고, 이번 토론회는 그의 그런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했다.
트럼프의 세금보고와 관련한 새로운 폭로는 우리가 늘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해주었을 뿐이다. 워싱턴포스트의 트럼프 전담 팩트체커인 드류 하웰이 지난 2016년 보도했듯, 평생 단 한번 상장회사의 지휘봉을 잡았던 트럼프는 주주들을 희생양 삼아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 회사에 20억 달러의 개인부채를 떠넘긴 그가 최고경영자(CEO)의 직위를 앞세워 온갖 명목으로 수천만 달러를 챙긴 반면 회사는 도산했고, 주주들은 투자금을 몽땅 날렸다. 비록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무책임하게 행동한 상장사의 CEO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복잡하고 문명화된 사회에서, 비윤리적이거나 악취를 풍기는 모든 행동을 싸잡아 불법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법의 위에, 혹은 그 너머에 굳건히 자리 잡은 건전한 규범(norms)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는 규범 준수다.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양당 후보 중 어느 한 쪽이 룰을 무시한 채 상대의 발언 도중에 수시로 끼어들고, 야유를 퍼부어대며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면 제대로 된 대통령후보 토론회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보다 훨씬 새롭고도 해로운 행동을 선보였다. 그는 이전의 대통령후보들이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팩트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거짓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공화당은 아무런 대안 없이 오바마케어를 폐기하는 것이 대중의 지지를 받기 힘든 정치적 결정임을 잘 알면서도, 대체안에 대한 당내 합의조차 도출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에게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그로선 대체안을 갖고 있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트럼프가 깨버린 규범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그는 야당을 적법한 대화상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2016년 선거에서 그와 맞붙었던 상대당 후보를 투옥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는 대통령직과 자신의 비즈니스 이해관계를 분리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다.
그뿐 아니다. 그와 그의 가족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외국정부로부터 상표사용료나 호텔 수익 등의 형태로 수상한 선물을 받는다. 백악관 관리들은 공공연하게 트럼프와 그의 가족의 사업이익을 챙겨준다. 트럼프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기업들에게 상을 주기도 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자유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겁주기다.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일부 정부기관들은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트윗에 경고표시를 한다는 트위터의 결정이 나오자 지체 없이 보복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정적을 상대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권위주의의 가장 위험한 신호다.
지표상으로 볼 때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한참 뒤진 상태다. 우리는 심한 압박에 처한 그를 면밀히 지켜보아야 한다. 상황이 계속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그는 더욱 필사적이고, 더욱 비윤리적이고, 더더욱 공격적이 될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그의 거친 공격을 꿋꿋하게 견뎌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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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