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2020-09-22 (화) 김효선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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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홍콩에서 개최되었던 아시아 장애인 포럼에 한국대표였던 친구를 따라 참여한 적이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홍콩의사와 속닥이며 여러 나라의 대표들이 각국의 장애인 교육, 복지, 행정에 관한 발표를 할 때 개인평을 달기도 했다.

일본대표가 발표 중에 보여준 장애인 시설의 사진 중에 화장실 사진도 있었다. 휠체어가 드나들기 쉽게 넓은 문으로 되어있고 변기로 옮겨 앉기 쉽게 튼튼한 보조장비들이 붙어있었다. 홍콩의사가 옆구리를 찌르며 “일본 화장실이 우리 수술실보다 깨끗하다”며 농담을 했다.


어떤 나라 대표가 발표 중에 질문을 받게 되었다. 질문자는 보통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을 길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발표자의 나라에서는 한명도 보지 못했다며 그 나라에는 장애인의 숫자가 적은 것이냐고 물었다. 발표자는 당황하다가 얼굴에 좀 냉소적인 미소를 띠며 “모두 직장에 갔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대낮에 길을 다닐 장애인이 없을 것이다”라는 농담으로 답을 했고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 당시 한국에서도 감히 휠체어를 타고 나가는 것은 힘들었고, 나가더라도 보도 블럭의 턱이 깎여있지 않아 위험하게 차도로 다녀야 했다. 국가의 복지제도와 장애인 접근권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장애인들이 길에 나와 다니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길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는 나라는 아직 장애인 복지가 정착을 못한 곳이고, 거리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는 나라는 장애인 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라고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미국에 와서 40여년을 지내는 동안에도 그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만 해도 쉽게 파워휠체어를 타고 이리로 쓱 지나가고 저리로 총총히 다니는 것을 쉽게 본다. 마치 동지애를 느끼듯이 다른 휠체어 탄 이를 만나면 손짓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쇼핑몰에도 휠체어를 타고 혼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좀 더 심한 장애를 가진 이들도 보호자들과 쉽게 휠체어를 타고 나와 음식도 사먹고 아이쇼핑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는 미국은 한번 밖에 나가기도 전쟁인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장애복지의 선진국이자 장애인의 천국이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지난 3-4년 동안 나의 몸을 움직이기는 일이 좀더 힘들어지면서 드디어는 의사가 파워체어를 타라는 죽음 같은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파워체어를 무시하고 2년을 버티다가 팔로 굴려야하는 휠체어로는 매 블럭마다 쉬어서 가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동안 먼지만 쌓여가던 파워체어를 꺼내 타고 쑥스런 마음으로 처음 집밖으로 나가봤다.
정말 힘도 적게 들고 편안한데다가 속도도 장난이 아니었다. 우와 넘 신나는 일이었다.

처음엔 대여섯 블럭을 돌고 들어오다가 자신감이 붙자 1마일이 넘게 떨어진 곳까지도 매일 마실을 나갈 수 있었다.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며 여태까지 들어만 봤던 장애인 천국의 복지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니다보니 걸어 다니면서는 절대 인지할 수 없었던 보도 블럭의 울퉁불퉁 작은 높낮이에도 휠체어가 쿵쿵 내려앉아 허리가 부러질까 속도를 줄여야했고 점점 멀리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문제는 파워체어를 타게 되면 반드시 램프가 장착된 밴이 있어야만 먼 곳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서야 보이지 않던 현실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길에서 많은 장애인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복지정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신발처럼 여기는 자동차도 램프를 달면 가격이 두배가 되어버리는 밴이 장애인들에게 없기 때문이었다.

거리가 먼 직장도 갈 수 없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액세스차를 얻어 타고 병원을 가려면 하루를 소비해야만 하는, 보이지 않던 장애인 복지의 뚫린 구멍이 보이는 것이다.

<김효선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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