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2020-09-19 (토)
김주성 샌프란시스코
‘한잔의 여유’라는 광고 속 카피처럼, 내가 커피를 처음 마신 것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우리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 엄마가 내오던 커피를 찔금 마셔 본 것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커피 맛의 기억은 자판기 커피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쓰면서 달고 그러면서 부드러운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자판기 커피, 이것이 내 기억 속의 첫 커피이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 로비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참 많이도 뽑아 마셨다. 아침에 잠이 안 깨서 한잔, 점심 먹고 친구들과 한잔, 입이 심심해서 한잔.
다방이라 불리던 곳들이 커피숍이 되면서 짙은 갈색의 원두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첫 맛은 쓰지만 구수하고 담백하고 개운한 원두커피를 마시는 것도 색다른 맛이었다. 세상이 점점 변하면서 외국에서 들어온 커피 매장들이 판을 치게 되고 커피에 이런저런 시럽과 토핑을 얹어 먹는 이름도 긴 커피들을 먹게 되었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커피를 좋아한다. 한번은 호텔 로비의 커피숍에 갔다가 끊임없는 리필에 거절하지 않고 계속 받아 마셔 고생을 한 적도 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고 육아와 살림을 오롯이 혼자 하면서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던지 그때 내 곁에 나를 붙잡아준 것은 바로 믹스커피였다. 이 믹스커피만 한 봉지 타 먹으면 배고픔도 사라지고 피로도 가시고 없던 힘도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 당시 같이 아이를 키우던 아줌마들은 다 믹스커피를 하루에 몇 잔씩 마셨다. 그렇지 않고는 그 고된 하루를 견딜 수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갖게 되면서 온 동네 아줌마들은 우리집에 와서 한 번씩은 다 커피를 마셨고, 모임마다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할 수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나의 머신이 수명을 다하고, 지금은 에스프레소만큼 진한 맛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원두를 바꿔가면서 원두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드립커피를 즐기고 있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세상과 관계를 갖는 것이다. 로비의 자판기 커피, 주구장창 앉아서 수다 떨며 마시던 원두커피, 육아로 지친 아줌마들과 함께 타먹던 믹스커피, 비싸서 눈치 보면서 1잔만 먹던 캡슐커피, 커피 내리는 시간이 길어 그동안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는 드립커피처럼 커피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세상은 갓 볶은 원두의 커피향처럼 신선하고 깊은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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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샌프란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