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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개표작업 한 달간 이어질 수도… 대비 필요

2020-09-14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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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우려를 자아내는 11월3일의 시나리오에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선거일 시나리오는 황당한 판타지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에 바탕을 둔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이다. 선거당일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경합주를 포함한 과반 수 이상의 주에서 상당한 격차로 조 바이든에 우위를 보일 것이다. 이후 며칠에 걸쳐 우편투표와 부재자투표의 개표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승세는 바이든 쪽으로 기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뒤집힌 개표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미국민은 또한 어떤 반응을 보일까?

먼저 이런 상황이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인 이유부터 살펴보자. 이제까지 나온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직접투표와 우편투표 사이에서 상당한 당파적 차이를 보인다. 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87%는 투표소로 직접 가서 투표를 하겠다고 밝힌 반면 바이든 유권자들의 경우 47%만이 같은 대답을 했다. 민주당 측 데이터 전문업체인 호크피시가 실시한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유권자들의 69%가 우편을 이용해 투표할 것이라고 밝힌데 비해 트럼프 유권자들의 19%만이 동일한 견해를 보였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한 호크피시는 최근의 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선거당일 밤, 우편투표의 15% 정도만이 개표된다면 트럼프가 선거인단 408명의 표를 확보할 것이고, 바이든은 130명의 표를 얻는데 그칠 것으로 점쳤다. 그러나 전체 우편투표의 75%가 개표된 나흘 뒤에는 바이든이 334명, 트럼프가 204명의 선거인단 표를 각각 확보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선거 예측모델을 믿지 않는다 해도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2018년 중간선거 투표일 밤, 데이비드 그레이엄이 애틀랜틱지에 게재한 에세이를 통해 밝혔듯 초반 개표결과는 민주당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여론조사의 전망치와 달리 하원과 상원에서 새로 추가한 의석수가 예상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몽 같은 2016년 선거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잠정투표(provisional ballots)와 우편투표 개표결과가 집계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당시 연방 하원의장이었던 폴 라이언(공화. 위스콘신)은 “선거당일 밤 우린 캘리포니아에서 26석을 잃는 선에서 선방했다. 그러나 3주 후에 나온 최종개표 결과, 공화당 후보들은 모든 경합 선거구에서 패했다. 캘리포니아는 논리적인 이해를 거부한다”며 어이없어 했다.

사실 에드 폴리와 찰스 스튜어트와 같은 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청색 반전”(blue shift)에 대해서는 완전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반전을 수상쩍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다.

2018년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트럼프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플로리다 주의 주요 선거구 두 곳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공화당 후보들과의 표 차이를 좁혀가자 트럼프는 “갑자기 출처불명의 무더기 표들이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많은 투표용지가 분실됐거나 위조됐다. 더 이상 공정한 개표는 불가능하다. 어마어마한 부정투표다. 투표일 당일의 개표결과를 따라야 한다”는 트윗을 날렸다. 11월 선거에서 그의 정치운명이 위기를 맞는다면 트럼프가 어떤 일을 벌일까 상상해보라.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댄 베이어는 “트럼프의 불복 방법”이라는 글을 통해 끔찍하면서도 완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의 윤곽을 제시했다. 베이어는 애리조나와 플로리다에서 접전이 벌어지면 이들 두 곳의 공화당 주 정부는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관련법을 개정, 그들이 직접 공화당 선거인단을 임명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주 정부를 양분한 위스콘신의 경우, 베이어는 다음과 같은 수순을 가상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 의회는 선거인단 지명방식을 바꾸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기로 약속한 선거인(elector)들을 승인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소속 주지사는 위스콘신 주법을 근거로 조 바이든을 지지하는 선거인단 명부에 주 선거관리위원회의 인증을 받았다는 공식 인장을 찍고 서명할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 트럼프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를 벌이라는 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주지사가 여러분의 대통령을 상대로 승리를 도둑질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폭풍 트윗을 날릴 것이다.”

이런 국가적 악몽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물론이다. 코비드-19 대처 실패로 이미 이미지를 구긴 미국이 ‘민주주의 오작동 국가’의 표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막아줄 두 개의 거대한 세력이 존재한다. 그중 첫 번째는 언론이다. 이제 언론은 선거일 당일 밤에 승패가 결정된다는 기존의 개념을 떨쳐버리고, 선거의 달(election month) 내내 인내심을 갖고 최종 결과를 기다릴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각 주의 주 정부가 선거당일 밤 승자를 인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통계치를 바탕으로 승자를 선언한 것은 늘 언론기관이었다. 이제 언론은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대중을 교육해야 한다.

두 번째의 결정적 세력은 존 로버츠 주니어 대법원장이다. 만약 이런 식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결국 법원이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선 관련 사안은 연방대법원으로 가지 않는다. 헌법은 오직 주 정부만이 주의 선거인단을 결정할 수 있다고 분명히 못 박아 두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은 지난 2000년 선거에서 연방 대법원은 이 같은 제한 규정을 내동댕이쳤다. 이는 이번에도 선거 논란이 신속하게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연방 대법원장이자, 최종 표결권을 쥐고 있는 로버츠가 버티고 있다. 결국 이 무시무시한 재앙을 끝내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구할 권한은 대법원장 단 한명에게 돌아갈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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