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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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2020-09-10 (목) 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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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어머니가 쌀을 씻으며 말하신다.
사람은 빚 없이 산다지만 다 빚으로 산단다.
저 꽃나무도 뿌리를 적신 이슬에게 빚졌지
구름도 하늘이 길 하나 빌려 주지 않으면
어떻게 구름이 구름으로 흘러갈 수가 있나.
내 아버지도 평생 네게 빚지고 저승 갔지
그 빚 다 갚으려고 아버지 참새 한 마리로
아침부터 마당 대추나무에 날아와
저렇게 미주알고주알 끝없이 노래해 대지
나도 아버지에게 평생에 진 빚 갚으려
흥얼흥얼 아침부터 맞장구친다고 바쁘지
아버지 먹고 가라고 쌀 한 줌 진작 뿌려 줬지

김왕노 ‘빚’

‘빚’에 한 획 더하니 ‘빛’이로구나. 너의 믿음인 빚 얻으면 내 기쁨 한 획 더하여 세상 빛내라는 뜻이로구나. 나무는 이슬 빚 얻어 꽃으로 갚고, 구름은 하늘 빚 얻어 단비로 갚고, 아버지는 이생 빚 갚으려 아침 노래 부르고, 어머니는 흥얼흥얼 맞장구치다 또 쌀 한 줌 갚는구나. 빚은 나 아닌 것들이 내게 쳐주는 헹가래요, 빛은 내가 거드는 손짓이로구나. 다만 숫자로 된 빚은 애초 그런 마음이 아니었기에 빛보다 어둠에 가깝도록 무겁구나. 반칠환 [시인]

<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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