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 월요일 노동절은 전통적으로 미 대선의 마지막 질주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전당대회를 통해 확정된 최종 전략으로 본격 전투에 돌입하는 이 시기에 맞춘 듯 금년 내내 큰 변화 없던 대선전이 요 며칠 사이 아연 뜨거워졌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계속 뒤져온 꽉 막힌 판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지막 출구로 택한 공포전략 ‘법과 질서’가 일으킨 파장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위스콘신 주 커노샤의 경찰 과잉총격으로 다시 불붙고 일부 시위가 약탈과 방화, 총격이 난무하는 소요사태로 비화되면서 이에 따른 혼돈과 불안이 선거의 와일드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1일 폭력시위 현장 커노샤로 날아간 트럼프의 관심은 대통령으로서 인종차별 해소나 총격 피해자 위로가 아니었다. 폭력시위를 ‘국내 테러’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역전이 절박한 재선 후보로서 ‘법과 질서’ 메시지를 부각시키는데 집중했다.
트럼프 진영은 중산층의 상징인 교외지역 중도 표밭을 겨냥한 이 전략이 폭력 악화로 반사이익을 얻는다는 계산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백악관 참모 켈리앤 콘웨이는 폭스와의 인터뷰에서 “혼란과 무정부주의와 밴달리즘과 폭력이 심해질수록 공공안전 및 법과 질서를 위해 누가 최선인가에 대한 명확한 선택을 내리는데 더 좋다”라고 버젓이 말했다.
선거 전 코비드-19 백신 개발을 제외하곤 “패배를 향해가던 트럼프가 이보다 더 효과적인 캠페인 메시지를 생각해내긴 힘들 것”이라고 멜버른대학 티모시 린치 교수는 지적한다.
‘법과 질서’가 공화당에게 여러 차례 승리를 안겨준 단골 성공전략이기 때문이다. 1968년의 리처드 닉슨과 1988년의 조지 H.W. 부시가 대표적 수혜자다.
1968년 4월 민권운동의 대부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로 미 전국 100여개 도시는 폭력시위에 휩싸였다. 약탈과 방화, 총격 등으로 격화된 소요사태가 계속되었고 거의 백인 중·상류층이었던 교외지역 주민들은 거센 폭력의 물결에 분노하고 두려워했다.
당시 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재선을 포기했고, 유력 대선후보 로버트 케네디는 킹 목사에 이어 6월 암살당했다.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가 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베트남전 지지파와 반전파가 격돌하는 당의 단합은 그의 역량 밖이었고, 그가 내세운 ‘빈곤과의 전쟁’ 공약은 도시가 불타고 아들들이 전쟁에서 죽어가는 참상을 겪고 있는 미국인들에겐 허황된 소리였다.
공화당 후보 닉슨은 ‘법과 질서’를 제시했다. 폭력과 범죄 퇴치를 위해 경찰예산 증액을 공약한 그는 ‘침묵하는 다수’의 표심을 얻어 32개주에서 승리해 당선되었고, 4년 후에도 ‘법과 질서’ 메시지로 49개주에서 이기는 압승을 거두었다.
범죄가 다시 대선을 압도한 것은 20년 후 1988년이었다. 여름까지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가 현직 부통령 부시를 평균 10포인트로 계속 리드했다. “그러나 듀카키스는 본선에서 53%-46%로 패했고 사상 가장 허약한 후보 중 하나라는 불명예까지 안게 되었다…법과 질서를 강조한 부시의 네거티브 전략이 결정적이었다.”고 린치 교수는 설명한다.
1986년 매사추세츠의 죄수 주말 휴가제에 의해 일시 출소한 종신형 복역수 살인범 윌리 호턴은 돌아가지 않고 잠적했다가 다음해 메릴랜드에서 한 여성을 강간하고 그녀의 남자친구를 칼로 찌른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듀카키스였다.
“듀카키스의 범죄대책은 주말 교도소 패스”라는 부시팀의 메시지도 강력했지만 더 큰 문제는 네거티브 전략은 무시한다는 원칙에 따른 듀카키스의 무대응이었다. 반격 없는 부시의 주장이 ‘사실’로 굳어지면서 듀카키스는 범죄에 허약한 후보로 낙인찍혀 버린 것이다.
닉슨이나 부시 때와는 달라진 정치환경에서 ‘법과 질서’가 트럼프에게도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바이든의 민주당은 험프리 때와는 달리 ‘반(反)트럼프’로 단합되어 있으며, 듀카키스와도 달리 지하실에 칩거하던 바이든은 현장유세를 통해 트럼프의 폭력조장을 비난하며 (좀 늦긴 했어도) 강력 반격에 나섰다.
현재 교외지역은 인종적으로 다양하다. 더 이상 백인들만의 거주지가 아니다. 인종차별 항의에 공감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물론 폭력시위까지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폭력시위와 단속이 금년 선거의 주요 이슈도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경제 불안이 최우선 관심사이며 폭력범죄는 한참 아래에 랭크되어 있다. 아직은 그렇다. 트럼프 작전의 표심 공략 효과 여부는 앞으로 한 두주가 지나야 여론조사를 통해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며칠 대선 이슈의 무게중심이 ‘코비드’에서 ‘법과 질서’로 부쩍 기운 것만은 확실하다. 트럼프가 폭동과 범죄 논쟁을 불붙이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이다. 민주당 기존 지지층이야 꿈쩍도 않겠지만 일부 부동층이 트럼프의 치안강화 메시지에 솔깃한 것도 현실이다.
좀체 사라지지 않는 바이러스가 두렵고, 폭력과 범죄도 겁나는 보통 유권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안정된 일상의 회복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은 ‘트럼프의 미국’과 ‘바이든의 미국’, 어느 쪽에 있을까. 서로를 ‘재앙’으로 공격하는 양 캠페인의 공방전을 지켜보며 정답을 찾기 위해 고민할 날도 오늘로 딱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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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