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페인 독감의 교훈

2020-08-18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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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국인이 코비드-19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최악의 가을을 맞을 수 있다”

지난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로버트 레드필드 국장이 내놓은 경고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얼마전 “새로운 확산 물결이 가을에 올 것”이라고 했다. 앤서니 파우치 NIAID 소장은 팬데믹 초기부터 ‘두 번째 파도’에 대해 경고해왔다.

최근 전 세계에서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팬데믹 초기에 호되게 당했으나 강력한 봉쇄정책을 펼쳐 진압에 성공했던 나라들이 새로운 감염 급등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도 초기에는 어느 주보다 방역을 잘해 모범 케이스로 꼽혔다. 그러나 5월말 성급하게 셧다운을 해제한 후 6월말부터 확진자수가 연일 최고기록을 경신, 현재 62만명을 넘어섰다. 미국 50개주 중에서 1위다.

이것이 2차 확산일까?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한다. 1차 대유행이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계속 새로운 인구와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이어서 여전히 1차 웨이브 속에 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등 보건관계자들이 ‘재확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2차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면서, 많은 학자들은 3차 대유행까지 예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100년전 있었던 최초의 팬데믹, 스페인독감의 경험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19년 전세계를 휩쓴 스패니시 플루는 미국에서 세번의 확산물결이 있었다. 그 바이러스가 코비드-19와 같은 H1N1 아형이고, 3차 확산까지 이어지면서 1년반 만에 집단감염으로 종식됐다는 사실에서 학자들은 코로나 팬데믹의 진행과정을 예측하는 것이다.

스페인독감의 주역은 스페인이 아니라 미군들이었다. 1918년 3월초 캔자스 주 포트라일리 육군부대의 캠프에서 100케이스가 처음 보고됐다. 이 숫자는 일주일 만에 4배로 늘었고, 5월부터 수십만명의 미군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 각지에 배치되면서 단기간 내에 전세계로 퍼졌다.

2차 물결은 그해 9월 보스턴 외곽의 육군과 해군시설에서 시작돼 11월까지 피크를 이루며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다. 3차 물결 역시 전쟁이 끝나고 귀향한 미군들로부터 시작됐다. 11월11일 종전기념일을 축하하며 사람들이 몰려나왔는데 바로 한달 후부터 다시 플루가 성행했다. 팬데믹은 결국 3차 파도가 지나간 후 1919년 여름에야 종식됐다.

이 독감으로 세계 인구의 3분이 1이 감염돼 5천만에서 1억명이 숨졌다. 1차대전 사망자 900만명의 5~10배에 달하는 수치로, 미국에서만 67만5,000명이 희생됐다. 사망자 수가 큰 폭으로 차이나는 이유는 전시에 행정력 미비, 정치적 혼란으로 제대로 된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진단도 못 받고 야전에서 사망한 군인들이나 합병증 사망자는 포함되지 않았고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사망자를 추정할 수 없는 나라들도 많았다.

지금 미국이 중국에 대해 코로나바이러스의 책임을 묻고 있지만 100년전 훨씬 많은 인명피해를 낸 팬데믹의 발원지가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후안무치라 할 수 있다.


스페인독감은 바이러스의 기원과 종식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20~40세의 건강한 청년들에게 유독 치명적이었는데 그 이유도 미스터리다. 자세한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기록과 자료들이 유실됐다. 당시 유럽은 전쟁 때문에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이었고, 러시아와 멕시코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베르사유 평화조약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팬데믹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백신은 물론 치료제도 없었으니 당시의 대처법은 격리, 개인위생, 공공모임 제한 등의 비약품적 조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그런 조치를 적극 시행한 지역은 선방했으나 방역조치를 하지 않거나 조기 해제한 곳에서는 2차 3차 확산의 피해가 커졌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는 초반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해 치사율이 낮았으나 얼마 후 공공집회 금지를 누그러뜨리자 치사율이 확 올라갔다. 필라델피아는 첫 환자 발생 다음날부터 공공장소에서 기침, 침뱉기, 코풀기 등을 금지했지만 열흘 후 20만명이 모인 퍼레이드를 벌인 결과 미국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가 됐다. 샌프란시스코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최초로 실시했지만 한달도 안 돼 종전축하와 함께 마스크 벗어던지기 행사를 하고 난 후 호된 대가를 치렀다.

그때는 팬데믹 경험도 없고 의료체계가 허술해서 그랬다고 치자. 지금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대처상황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사실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어쨌거나 정말 3차까지 온다면 큰일이다. 장기전에 대비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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