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20년 이상 5선 교육위원으로 일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었던 단어 중 하나가 ‘Accountability’ 이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행위에 대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교육청의 교육감을 비롯한 고위직들을 위시해 평교사들 그리고 학교에서 안전, 청결, 급식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다. 각자 맡은 일이 있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실행한 모든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원칙은 교육위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리고 교육위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위원들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할 때 해당 위원의 임기 중 발언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발언 내용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정책 결정 때 행해지는 표결 내용이다.
발언이 장황스러워 논의되는 정책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판단이 쉽지 않을 때도 있고 표결권의 행사가 발언 내용과 다를 때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언 없이 표로써만 자신의 뜻을 표시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또한 찬반 의사 표시에 자신이 없을 경우 기권을 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이유를 밝히는 것이 옳다. 그래서 표결 때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위원들을 볼 때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자리만 뜨면 기권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찬반 어떤 입장을 취해도 비난을 받을 수 있기에 그럴 수도 있다.
교육위원회의 회의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공개회의와 비공개회의이다.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비공개회의가 존재하는 이유는 논의 대상자의 프라이버시나 법적으로 보호해주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직원 개개인의 인사 문제나 개별 학생들의 징계 문제를 다룰 때는 비공개로 토의를 한다. 그렇지만 비공개로 논의되는 사안들도 결정 자체는 공개회의에서 표결을 거친다. 그리고 그러한 표결 때 어느 교육위원이 어떻게 표결에 임했는지는 투명하게 드러나고 기록되게 된다.
이러한 정치 원칙에 입각해 교육위원 활동을 해왔었기에 그런지 몰라도 가끔 고국의 국회에서 행해진 의사 진행이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최근 한국 국회에서 부동산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표결을 했는데 상당수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집단 퇴장을 했다고 한다.
분명 의사 진행 과정 중에 불만족스러운 데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은 한다. 그러나 퇴장하는 것보다는 자리에 남아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확실히 지적하고 표결에 참여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절차상에 무엇이 문제이고 법안 내용은 어떤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 기록에 남아있어야 국민들도 추후 그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논의된 과정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다음 선거에서 그들을 표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국회의장과 부의장 선출 때는 표결이 아예 무기명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물론 법에 허용된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유권자들의 의사를 대리하기 위해 유권자들의 표를 받아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표결내용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동료 의원의 눈총이나 속해 있는 정당에서 받을 수 있는 질책이 두려운 것인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을 선출해주고 그들을 선거를 통해 책임 추궁을 하게 될 유권자들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민주주의에도 여러 다른 형태가 있을 수 있고 선출직 기관의 운영도 그 나라의 문화나 필요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들의 표결 내용이 투명하지 않을 때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과연 무엇으로 그들의 행위를 평가하나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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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